비트겐슈타인의 위대성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대체로 『논리철학논고』로 대표되는 전기(혹은 청년) 비트겐슈타인과 『철학적 탐구』로 대표되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으로 나뉜다. 이러한 구분을 그의 삶과 연관시켜 보면 무척 흥미롭다. 그런데 그의 후기 사상은 대체로 소위 “인간의 자연사(自然史)”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바뀐다. 이것은 평범한 삶의 사실들이며, 비트겐슈타인이 새로이 발견한 삶의 사실들이란 사람과 더불어 있는 사실들이라고 한다.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이 결국 일상적인 삶 자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의 몇가지 말들을 살펴보자.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말들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나는 이 말들 속에서 엄청난 진실함을 느낄 수 있다. 철학을 하는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뭔가 특별하고 기발한 생각을 만들어 내겠다는 야심(ambition)이다. 이런 야심은 진리를 아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 훌륭한 철학자가 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것이다. 더욱 지적이고, 현학적이고, 박학하게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뛰어난 글을 쓰는 것이 목적이 되면 결코 뛰어난 글을 쓸 수 없다. 훌륭한 사상가가 되는 것이 목적이 되면 결코 훌륭한 사상가가 될 수 없다.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결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어김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빨리 이런 마음부터 비울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바램 자체가 진실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진리가 목적인 사람은 세상의 빛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알려질 수도 있고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부수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아(自我)가 목적인 사람은 위험하다. 자아가 목적인 사람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진실에 눈이 멀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진리가 아닌 지식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많은 지식을 쌓고 그 지식으로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현란한 지식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 길을 가는 자는 결국 자기 자신을 잃고 말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결코 완성된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감정적으로도 매우 불안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진실했다. 그것은 그가 철학교수이면서도 위와 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저런 말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틀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비트겐슈타인을 좋아하는 것이다. - 2009년 3월 -내 사유가 사실 재생산적일 뿐이라는 데는 일리가 있다. 나는 내가 하나의 사유노선을 창안해 내었다고는 결코 믿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다른 누군가에게서 그것을 얻었을 뿐이다. 나는 다만 그것을 명료화라는 나의 작업을 위해 열렬히 수용했을 뿐이다. (Culture and Value) 철학의 가장 큰 장애물의 하나는 새로운, 깊은 //전례가 없는// 해명을 기대하는 것이다. 모든 반성은 내가 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평범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철학에서 어떠한 새로운 말도 사용될 필요가 없다. 오래도록 쓰여진 평범한 말로도 충분한 것이다. 철학에서 과장을 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Philoso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