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으로서의 철학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개 절박함과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다. 아니, 학문화된 철학 자체가 이미 절박함과 진지함을 잃게 만든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철학사(哲學史)를 공부하고 있다. 어떤 철학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 공부하고,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말하는 철학이다. 과거 철학자의 사상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것이 전부이다. 단지 그 이해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나고 논문들이 씌어진다. 다들 자신의 이해 방식이 원저자의 오리지널한 의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것은 소위 철학교수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과 글에는 별로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작업은 오직 철학사적인 정리일 뿐 우리 자신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다. 철학교수들은 철학을 강의할 수는 있지만 삶을 가르쳐 줄 수는 없다. 그들은 선생은 될 수 있지만 스승은 될 수 없다. 철학교수들은 철학적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한다. 훌륭한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도 잘해야 하고, 중국어도 잘해야 하며, 가능하면 독일어나 일본어도 할 줄 아는 것이 좋다. 그리고 철학사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고전들을 깊고 폭넓게 읽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디에서도 많은 철학적 훈련을 거친 사람이 진리를 발견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만일 철학적 훈련이 우리에게 진리와 삶의 지혜를 줄 수 있다면 버트란드 러셀이나 하이데거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은 그런 경지에 도달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진리를 발견한 것 같지 않다. 그들의 책 속에 보이는 것은 오직 수많은 질문들과 회의주의, 그리고 언어적 논리일 뿐이다. 실상에 대한 통찰력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통찰력은 오히려 종교적인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안다. 삶의 의미와 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은 종교적인 수행을 통해서 오지 결코 철학적인 사색을 통해서 오지는 않는다. 종교적인 스승들은 말한다. 언어에 얽매이지 말고 너의 삶과 너의 내면과 실상을 바라보라고. 철학교수들은 대부분 언어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책을 중시한다. 계속해서 책, 책, 책 뿐이다. 읽고 또 읽고 분석하며 비평한다. 책을 읽지 않으면 철학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책은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탐구 방법은 아니다. - 2009년 3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