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스마트폰과 함께한 하루…“너 없인 못 살아”

파라리아 2010. 3. 26. 23:52

스마트폰과 함께한 하루…“너 없인 못 살아”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완전무장…‘1인다역’ 능수능란

 

 

전화만 받는 전화기는 이제 명함도 못 내민다. 글자 그대로 ‘똑똑한 전화기(스마트폰)’가 MP3 플레이어, 다이어리, 전자사전, 넷북 등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1인 다역을 능수능란하게 해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함께한 김 기자의 알차고 유용한 24시간 엿보기.

부드러운 음악이 귓가를 두드린다. 반쯤 깨어 있던 뇌가 완전히 맑아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5초.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던 몸은 자연스레 일으켜진다. 뻗은 손에 잡힌 기계는 알람보다 20분 빠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오늘의 수면시간은 6시간 30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몸은 가뿐하다. 밤새 수면 패턴을 분석해 일어나기 가장 적절한 때를 맞춰준 애플리케이션 슬립사이클(Sleep Cycle) 덕분이다. 눈을 비비며 이번 주 수면시간표를 살펴보고는 좀 놀랐다. 침대에 눕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 주말에 푹 자고 다시 수면 흐름을 되돌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허둥지둥 출근 준비를 하고 나오자 잡아타야 할 버스가 눈앞으로 휙 지나가버렸다. 아직 리모델링되지 않은 옛날 정류장인지라 버스 도착시간을 알 수가 없다. 날씨도 춥고 시간도 빠듯한데 계속 기다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예전 같으면 당연히 고민했겠지만 이젠 그럴 필요 없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버스 안내 애플리케이션 서울버스(Seoul Bus)를 찾아 즐겨찾기에 저장된 노선번호를 터치한다. ‘70번 버스는 두 개 앞 정류장에서 오고 있다’는 희소식을 알려줬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니까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된다. 9백원으로 편히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하루 예감이 좋다.

사흘을 고민하고 ‘지른’ 스마트폰… 가방이 홀쭉해졌다

3분 뒤 도착한 버스 안에서 e메일을 체크했다. 데이터 정액제 덕분에 와이파이(WiFi)가 잡히지 않은 곳에서도 3차원 그래픽 데이터망을 통해 얼마든지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다. 내친김에 트위터 애플리케이션 트윗버드(TwitBird)를 열어 간밤에 쌓인 트위터 글들을 읽어봤다. 익스플로러로 이해하기 어렵던 트위터가 애플리케이션을 거치자 이해하기 쉬운 대화의 장(場)으로 변신했다. ‘오늘은 여유롭다’는 내 글에 친구가 오늘 볼 수 있겠냐고 답글을 보내왔다. ‘오케이’라고 응답을 보내고 나니 회사 앞. 주말을 앞둔 금요일의 업무가 시작됐다.

3개월 전만 해도 내 모토는 그랬다. 스마트폰이 뭐냐, 난 2차원(2D) 그래픽폰만으로 충분한 아날로그 인간이다. 그렇게 꿋꿋하게 버티던 나의 ‘대쪽 같은 절개’가 꺾인 건 회사 선배가 아이폰을 구입하고 나서였다. 그가 보여준 애플리케이션들은 이제까지 상상할 수 없던 세계였다. 컴퓨터 게임, 닌텐도 게임 등 오락에 열광하는 나는 구겨진 휴지를 손가락으로 끈 뒤 쓰레기통에 던져넣는 게임 페이퍼토스(Paper Toss)에 낚였다. 하루를 고민하고 이틀을 번뇌하고 사흘 동안 통장 잔액을 헤아린 뒤 결국은 ‘질렀다’.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바쳐 손에 든 스마트폰은 묵직하게 빛나고 있었다. 장담하건대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사과’ 한 박스였다.

비싼 사과는 다행히 제값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일단 가방이 가벼워졌다. MP3 플레이어가 사라졌고 전자사전이 사라졌고 책이 사라졌고 다이어리가 사라졌으며 급기야 넷북이 사라졌다. 음악을 듣고 동영상을 감상하고 각종 사전 애플리케이션으로 단어를 찾으며 e북을 통해 몇백 권의 책을 손에 넣고 일정관리 프로그램으로 하루를 시간 단위로 관리하는 가운데 글을 쓰고 웹서핑을 하는 기계 한 대만 손에 남았을 뿐. 어쩌면 MP3 플레이어, 전자사전, 책, 다이어리, 넷북을 합친 가격보다 스마트폰 한 대 가격이 더 싸다. 세간에는 이를 보고 ‘본전은 뽑았다’고 한다.

정서적인 변화는 더 크다. 회의 시간에 내내 휴대전화를 잡고 있으면 눈총 좀 받겠지만 스마트폰은 괜찮다. 일정관리 애플리케이션 투두(2Do)를 열어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다음 프로젝트 일정을 넣어 놓는다. 인터넷 주소(URL)를 기록하거나 다른 사람과 일정을 공유할 수도 있을뿐더러 카테고리에 따라 일정을 분류하고 중요도를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손으로 쓰는 다이어리를 잊게 했다.

각종 메모도 이젠 아이폰 하나에 얌전히 들어앉았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부탁한 자료는 바로 찍어서 멀티미디어 메시지 서비스(MMS)로 보낸다. 자세히 보여야만 하는 사진이지만 접사 기능이 되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기에 굳이 무거운 카메라가 필요하지 않다.

회의에 들락거리는 가운데 하루 업무가 끝났다. 이제 엔터테인먼트 영역을 즐길 시간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업무시간에도 필요하지만 스마트폰이 제값을 발휘하는 시간은 퇴근 후다. 퇴근 준비 중에 왓츠앱(WhatsApp)을 통해 ‘오늘 갈 곳을 정하자’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이들끼리 무료로 소통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저녁에 가리라’ 마음속으로 점찍어둔 가게의 위치와 평을 맛집 애플리케이션 윙버스(WingBus)를 통해 재확인한 뒤 친구에게 ‘어떠냐’고 물었다.

애플리케이션 활용법 따라 기계도 되고, 장난감도 되고

 
 일찍 도착했고, 친구는 좀 늦을 것 같다고 한다. 별로 춥지 않은 날씨에 안심하며 역 앞에 걸터앉아 짧은 게임을 즐긴다. 빠르게 떨어져 내리는 동그라미나 세모를 음악에 맞춰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리듬게임 탭탭 리벤지3(Taptap revenge3)은 어느새 레벨 12를 ‘찍었다’. 아이폰의 중력 인식기능을 적용했기 때문에 중간중간 손목을 비틀어줘야 하는 게 재미있다. 한 곡을 마치고 나니 친구가 도착했다.

술집에서 흐르는 감성적인 음악에 둘 다 귀가 솔깃해졌다. 음악을 ‘듣고’ 누구의 무슨 곡인지 찾아주는 사운드하운드(Soundhound)를 켜고 들이밀었다. 몇 초 안 돼서 나온 생소한 그룹명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도 잠시, 밑에 뜬 유튜브의 콘서트 실황에 반해 이름을 기억해놓았다. 다음번에 아이튠즈로 구입해야겠다.

어느새 늦어진 시간에 한 잔 더 시킬까 말까 고민하던 친구 앞에 지하철 애플리케이션 지하철(Jihachul)을 내밀며 안심시켰다. 그녀의 집까지 가는 열차의 막차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았다. 혹시 몰라 늦게까지 하는 2차 장소도 알아둔 참이다. 오늘 밤은 어쩌면 ‘똑똑한’ 메모장 오섬노트(Awesome Note)에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술로 빨개진 얼굴들이 담긴 사진과 함께. 모어로모(Morelomo)같이 특수 기능이 딸린 사진 애플리케이션을 거치면 막 찍은 밤도 예술이 되리라.

스마트폰의 참맛은 애플리케이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 그 활용법에 따라 그저 기계덩어리가 될 수도, 즐거운 ‘장난감’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장난감은 편리하기까지 하다.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삶을 옥죄는 방법 아니냐고. 또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알면 편하겠지만 모르고 살아도 괜찮은 기능들이 아니냐고. 다 맞는 말이다. 길을 가면서까지 웹서핑을 하고 애플리케이션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며 빛과 정보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사는 삶이 반드시 옳다고 주장할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다. 다만 편리한 즐거움이 없는 3개월 전으로 다시 돌아가기 싫을 뿐이다.

참, 길게 주절주절 늘어놓느라 스마트폰의 가장 큰 장점을 잊어버릴 뻔했다. 각종 영역을 아우르는 이 똑똑한 녀석은 무려 ‘전화 기능’도 제공한다. 오 세상에, 이런 신세계를 버리라고? 난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