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향기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의 의미 (법륜스님)

파라리아 2013. 6. 4. 11:51


내가 자식을 사랑한다 할 때 그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정말 나를 희생하고 자식을 도운다. 자식이 중심이고 내가 부차요. 자식에게 도움이 되면 내가 뭐든지 하겠다. 이럴 때 사랑이라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말은 하는데 내가 중심이고 자식이 부차요. ‘내 필요한 데로 니가 따라라.’ 이거는 이기심, 욕망이라 그래. 이거는 사랑이 아니에요. 이걸 불교에서 집착이라 그래. 집착이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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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자식을 헤치는 부모의 행동, 집착으로써 자식의 이익을 헤친다. 이 말이야. 부모가. 부모가 자식을 도와주는 게 아니고 부모가 자식을 헤친다. 그럴 때 “집착을 놔라.” 이렇게 말하거든요. “집착을 놔라.” 이렇게 말하니까 “내 자식인데 내가 어이 집착을 놓습니까?” 이렇게 하니 스님 뭐란다?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이렇게 말한다. 그거는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그 사람의 독립된 인격을 존중해라. 이런 의미에요.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하는 거는 비록 내 부모라 하더라도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으로 존중해라. 비록 내 자식이라 하더라도 독립된 인격으로 존중해라. 비록 내 남편이라 하더라도 독립된 인격을 존중해라,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라. 내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내 부모라는 이름으로, 내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내 아내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의 인격을 존중 안 한다는 거요. 우리가. 그래서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은 뒤집으면 ‘그 사람의 인생을 존중해라.’ ‘인격을 존중해라.’ 이 말이오.

예를 든다면 애기를 낳았어. 애기가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 가고 중학교 간단 말이오. 그러며 그때는 돌봐줘야 돼? 안 돌봐 줘야 돼. ‘아~ 네 인생 네가 살아라.’하고 애 낳아놓고, 우리 스님 말씀이 “다 네 인생 네 살아라.” 그러더라. “엄마는 네 인생에 간섭 안 할게. 잘 살아래이.” 이러고 그냥 버리느냐? 그런 뜻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아이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엄마는 자식을 돌봐줘야 돼.

만약에 엄마가 없어도 이 아이는 돌봄이 필요해요? 안 해요? 필요하니까 누군가는 돌봐줘야 돼. 그 돌봐 주는 사람을 우리는 엄마라. 부모라. 이렇게 이름 붙이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낳았으면 돌봐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어린아이를 만나게 되면 돌봐줘야 돼. 내 아이냐? 내 아니 아니냐? 관계없어요. 이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에. 그런데 돌봐줘야 되는데 이게 점점점점 애가 자라서 사춘기 된다. 사춘기라는 의미가 뭐냐? 신체적으로 남자 같으면 남성의 기상이 나타나고 여성 같으면 여성의 기질이 나타나요. 

남자애들 같으면 성기가 선다든지 여자애 같으면 유방이 나온다든지. 이렇게 신체가 성년으로써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 말이오. 그런데 신체가 성년으로 성장할 때 동시에 정신적으로 어떠냐? 신체에 부합하게 자기가 중심이 돼서 뭐 해보려고 그래. 그러니까 이제 전에는 엄마가 얘기하면 무조건 따랐는데, 자기가 “아닌데요.”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 말이오. “하지 마라.” 그랬는데 하기도 하고. “하라.” 그랬는데 안 하기도 하고. 이런 일이 생기니까 엄마하고 갈등이 생긴다.

그럼 이거는 애가 나빠진 거냐? 애가 크더니 중학교 가더니 애가 나빠졌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이거는 자연적 현상이다. 그러면 이건 어떻게 하느냐? 이 아이가 어떤 것에 자기가 시킨 데로만 쭉 따라왔는데, 이제는 자기가 이거를 판단도 하고 하려면 경험을 해야 돼. 그렇게 해서 잘못돼서 마음고생도 해보고 육체도 다쳐보고 이렇게 하면서 자기 경험에 의해서 자기 판단을 하는 시기란 말이오. 그럴 때는 엄마가 또는 부모가 ‘아 저러면 안 될 거 같아.’도 참아야 된다. 이 말이오. 

자기가 그 실수를 해서 그걸 가슴 아파하든, 돈을 잃든, 몸을 다치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가 경험을 해가도록. 이게 냉정하게 지켜봐 주는 게 진정한 아이들을 위한 사랑이다. 그런데 엄마가 자기 마음만 생각해서 ‘다치면 안 된다.’ 이 생각만 해가지고, 어린아이 때 돌보던 그 습관대로 계속 아이에게 뭐라고 뭐라고 하면, 이거는 부모는 부모대로 그 아이를 돌본다고 힘들고, 자식은 자식 대로 자기 경험을 할 기회를 상실해 버린다. 그래서 이 아이가 나중에 큰 손실을 본다. 손해를 본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제대로 못살게 만들어 버린다. 그럼 이럴 때 부모는 모른다는 거요. 자기 식대로 한단 말이오. 자기 생각대로. 그러면 아이를 한 발 멀어져서 냉정하게 지켜봐 주는 게 필요하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지. 다리가 부러져서 “엄마 나 병원에 데려다 줘,” 할 때 데려다 주지. 그전까지는 껍질 정도 벗겨지거나 이런 정도 놔둬야 돼. 그러면 지가 와서 “엄마 나 다쳤어. 도와줘.” 하면 도와주고. 도와 달라 할 때도 생각 좀 해보고 도와줘. 이 정도로 냉정해야 아이가 자립심이 생긴다. 더 성년이 되면 마찬가지야. 완전히 정을 끊어줘야 돼.

그럴 때 내 자식이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주고, 인생에 자꾸 간섭해서,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그렇게 간섭한다고 또 힘들어서. 아이는 그렇게 자기 인생을 살려니까 저항을 할 거고 그 갈등 때문에 괴로워하고 하소연하고. 가만 내가 들어보면 자긴 뭐 애가 문제인 거 같은데, 스님이 들어보면 ‘저건 네가 문제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이제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너나 잘살아라. 왜 니도 못사는 게 자꾸 남한테 간섭하려고 그러냐?” 이렇게 얘기하니까.

“오~ 일체중생을 다 내 몸같이 생각하고 동체대비로 돌보라는 부처님 가르침하고 안 맞지 않느냐?” 아마 이런 생각에서 질문하는 거 같은데. 조금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거 같은데. 하하하. 조금 더 붙이면, 남편이 결혼해서 아내하고 살 때, 남편은 아내 시킨 대로 다 100% 다해야 되요? 아내하고 서로 협력하는 것도 있지만 자기 인생도 좀 있어야 되요? 자기 인생도 좀 있지. 그럼 여러분도 남편하고 같이 살아도 남편하고 서로 협력해서 애 키우고 가정 돌보고 뭐 몇 가지는 하지마는 나머지는 그래도 여기 와서 법문 듣고 수행하고 이런 거는 자기 나름대로 자기 인생이 좀 있어야 안 돼요?

그런데 남편이 “너 돈 벌주면 집에 가만있지 뭣 때문에 절에 가느냐? 봉사는 무슨 봉사냐? 돈벌이도 안 되는데?” 이렇게 일일이 자꾸자꾸 얘기하면, 내 인생이라는 게 없어진다. 이 말이오. 그럼 남편 시키는 대로 밥 먹으라면 밥 먹고, 집에 있으라면 있고, 이렇게 살아지느냐? 이 말이오. 인생이. 그래서 얼마나 여러분들 그것 때문에 상담도 하고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그러고 또 남편도 그런 자기 인생이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볼 때는 아니다 싶지마는 그건 내 생각이고, 자긴 또 자기대로 생각이 있다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살더라도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야 된다. 제 맘대로 하도록 놔두라는 게 아니라. 일정한 그 사람의 신용과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존중해야 되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입장처럼 앉아서 “뭐 회사 끝나면 집에 들어오지 뭣 때문에 술 먹느냐?” “친구는 왜 만나느냐?” “초상집에 왜 갔느냐?” “친구 이사하는데 뭣 때문에 갔느냐?” 뭐 이런 식으로 나는 사회생활을 안 하니까 가정만 돌보면 되지마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그게 인간관계가 다 매여 있단 말이오. 

저도 마찬가지요. 예를 든다면 요번 초파일에 목사님도 오시고, 신부님도 오시고, 교문님도 오시고 많이 왔잖아. 그럼 여러분들은 “다른 종교인들도 많이 오셨다.” 이렇게 끝나지만, 그게 다 빚을 갚아야 되요? 안 갚아야 되요? 다 갚아야 돼. 다 크리스마스 때 그래서 더 바쁜 거요. 초파일보다. 목사님이 세 분 왔다. 그러면 내가 크리스마스 때 교회를 몇 군데 가야 된다? 세군데 가야 되는 거요. 그럼 거기 성당에서 또 두 군데 왔다 하면 크리스마스 때 두 군데 가는 거요.

그럼 개신교하고 천주교는 같은 날 하니까 몇 군데 가야 된다? 다섯 군데를 가야 되요. 일요일 날 세 번 뛰고 25일 날 세 번 뛰고, 24일 날 밤까지 해서 두 번 뛰고. 이렇게 뛰어야 된다 이 말이오. 그게 세상에 공짜라는데 없어요. 어디든지. 여러분들은 부조금으로 하지만, 이건 부조금이 왔다갔다 안 할 뿐이지 전부 다 거기에 대해서. 어떤 행사할 때 어른들이 왔다 하면 나중에 그쪽 행사할 때 가야 되고, 그런 게 없으면 관계가 다 끊어져 버려요. 그래서 바빠지는 거요. 

그런데 그런 거를 관계를 안 맺고 가만있으면 “거 뭣 때문에 왔다갔다하느냐? 크리스마스 때는 뭣 때문에 스님이 교회 가냐?” 이렇게 얘기하는데 세상 살려면 안 그렇다니까. 그러면 종교 간에 교류를 내가 포기해버리면 돼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자기 입장만 생각하면 안 되고 거기에도 또 그 사람은 나하고 관계 맺은 것 밖에 또 인생이 있다니까. 그런 거를 우리가 인정해서 어머니아버지가 어릴 때 싸운다. 엄마아빠가 싸워서 상처 입었다. 그러면 스님이 뭐라고 그래요? 

부모 싸우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내가 볼 때 내 부모지. 자기들끼리는 뭐다? 부부고. 내가 커보니까 부부는 싸울 일이 있어요? 없어요? 있다. 아~ 내가 커보니까 어릴 때는 내가 상처를 입었다 하더라도 커서 보니까 부부라도 싸울 일도 있구나. 그래서 우리 엄마 아빠도 싸웠구나. 그런데 내가 철이 없어 몰라가지고 싸우면 안 되는 줄만 알았지 싸울 수도 있는 문제구나. 이러면 어릴 때 입었던 상처가 탁~ 없어진단 말이오. 그래서 스님이 저그 부부 싸우는데 네가 무슨 관계가 있나? 

며느리하고 아들하고 싸우면 저그 부부 싸우는데 나는 상관없잖아. 그죠? 상관없이 그냥 소 닭쳐다 보듯이 보든지. 그게 잘 안되면 어떻게 한다? 슬그머니 문 닫고 외출을 해버려라. 싸움 끝나면 슬~ 들어오면 된다. 그러고 이쪽에서 뭐라고 그러면 어~~~, 저쪽에서 뭐라고 그러면 어~~~. 그러고 그냥 양쪽에 가타부타 말하지 말고 오~ 그래그래그래. 아이고 그랬나? 이러고 그냥 적당하게 넘어가 버려라. 남 싸우면 깊이 듣고 “그래? 그럴 수가 있어?” 이러면 절대로 안 된다. 그래서 스님이 여러분들도 스님한테 막 울면서 남편 욕해도 스님이 으~~~ 듣고 말잖아. 

그래 그런 것은 남의 인생에 너무 깊이 빠져들면 안 돼요. 그게 그 사람에게도 아무 도움이 안 되고 나를 괴롭힌다. 으음. 


- 법륜의 즉문즉설 제233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