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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지옥은 번지수가 없다” |
[그의 삶 나의 거울] 16 수행서 낸 김진태 교수 |
2013년 12월 31일 (화) 15:40:46
아주 오래 전 “아직도 강북에 사십니까?”라는 자조 섞인 말이 떠돌아다닐 때, 나는 딱 그 톤으로 “아직도 천당과 지옥으로 사람을 유혹하고 협박하는 종교를 믿으십니까?”라는 말을 하곤 했다. 유유상종, 끼리끼리 인연 있는 사람들과 모이기 마련이니 내 주위에는 그런 말을 할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간혹 이교도들을 만나면 농담처럼 건넸던 것이다. 물론 내 말을 이해할 만한 분들이고 일정 부분 자기 종교의 세속화, 대형화를 걱정하는 분들이라 말할 수 있었지만, 그분들의 마음이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그 말을 돌직구처럼 던졌던 것은 무례하게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들이대며 사찰에 불을 지르는가 하면 단군상을 파괴하는 등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전국적으로 발생되었고, 그러한 일의 단초는 잘못된 종교 교육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들의 무뇌아적인 행동은 여전한데, 신기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교세는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규모로도 전 세계에서 10위 안에 드는 것이 다 우리나라에 있고, 심지어 대통령을 비롯해서 지방 수장은 물론이고 심지어 동네 통반장까지 장악한 것 같은 상황이다. ‘대체 이것은 무슨 인연이고 어떤 업보의 소산일까?’라는 화두를 갖고 있던 차에 위빠사나와 사마타 수행을 해 오면서 몸소 수행 지도를 하고, 아울러 경주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와 전국의 사찰에서 불교를 강의하고 있는 김진태 선생님의 <천당과 지옥은 번지수가 없다>는 제목의 원고를 만났다. 불교는 물론이고 이웃종교에 이르기까지 예리한 통찰력으로 조목조목 비판하는 대목에서 속이 시원해지고, 철저한 수행과 계행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내용의 원고를 접하면서 답답했던 가슴이 열리는 것 같았다. 체증처럼 얹혀 있었던 화두가 풀린 듯 한 느낌이랄까? 암튼 문제 많은 그네들이 여전히 행세할 수 있는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었다. 하지만 원고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요즘 같은 출판 불황 시대에 스님도 아닌 불교학자의 종교 에세이는 출판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미신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다년간 경험한 결과 책에도 팔자가 있고 궁합이 있단 생각을 하고 있기에, 솔직히 불교학술전문으로 명성이 높은 민족사와는 궁합이 맞는 원고가 아니었다. 한편 종교 에세이는 필자의 유명세와 수행력에 비례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하였기에 책의 사주팔자를 쥐고 있는 필자를 만나면 출판 결정의 단서와 사이즈가 대략 나온다. 이 책의 저자인 김진태 선생님을 만나는 순간 출판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과 그동안의 내공을 첫 책에 어느 정도 담아 놓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의 첫 책이요,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의 불교 공부와 사색과 성찰, 수행력으로 빚은 결정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종교계를 걱정하는 시대다. 여론조사 결과 우리 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들의 1위가 정치인이요, 2위가 공무원·관료요, 3위가 성직자·종교인이라는 데서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맑히고 평화와 안식과 행복을 주어야 할 종교계가 오히려 불행의 근원이 된 까닭은 무엇인가? 저 머나먼 하늘이든 저 깊디깊은 땅 속이든 죽어가서 머물 곳은 없다. 그러므로 천당으로 유혹하고 지옥으로 협박하여 수금하는 종교적 사기꾼들에게 속아서는 안 될 일이다. 만약 천국이 번지수(番地數)가 있는 어떤 구체적인 장소라고 해도 탁하고 더러운 자들이 가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 천국이 되지 않는다. -<천당과 지옥은 번지수가 없다>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천당과 지옥을 어떤 공간적으로 있다는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천당을 헌금 많이 내면 갈 수 있는 곳처럼 유혹하는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도 그런 관념에 세뇌되었기 때문입니다. 천당은 세탁소도 아니고 목욕탕도 아니다. 마음이 깨끗해진 자라야 갈 수 있는 곳이 천당입니다. 마음이 탁한 사람은 설령 천당에 갔다 하더라도 금세 천당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김진태 선생님은 무엇보다 천당과 지옥을 공간적 개념으로 보고 유혹 당하고 협박 받는 이들의 사고방식을 뜯어 고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집필했다고 한다. ‘천당과 지옥은 번지수가 없다’는 제목도 이러한 저자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명명한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그릇된 종교관과 걷잡을 수 없이 타락한 종교의 세속화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울러 잘못된 종교적 환상에서 벗어나 올바른 종교 생활과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종교의 바른 가르침, 붓다와 예수가 펼친 정신을 실천하는 곳이 바로 천당입니다. 신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자기 내면세계를 정화시키고 성숙시킬 때 바로 그 자리가 천당입니다. 괴로움을 건너는 힘은 자기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법학도가 불교학도로 환골탈태한 까닭 그는 비록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불교학을 연구하고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늘 ‘종교인이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고뇌했다. 여러 성인의 가르침 중에서도 붓다의 가르침과 인연이 된 것이야말로 일생일대의 행운이라 생각했다. 온 우주의 진리를 깨치신 붓다의 가르침은 교리와 수행이 수레의 양 날개처럼 든든하게 받쳐줄 뿐만 아니라 바다가 여러 강, 하천, 도랑의 물을 다 받아들이듯이 여러 종교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철웅 큰스님의 권유를 받고 깊이 고민한 끝에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여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붓다의 가르침대로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는 확신이 들어 세속적인 영달을 누릴 수 있었던 법학도에서 불교학도로 환골탈태하였다. “사실 집안 분위기에 밀려서 법대에 들어갔습니다. 절에서 고시공부를 하는데 법학이 체질에 안 맞았고, 경전을 읽고 참선을 하는 게 좋았습니다. 대학 다닐 때 3년 가까이 매주 토요일이면 성전암에 올라갔습니다. 성전암에서 하루 밤 자면서 새벽이면 큰스님과 함께 참선을 했습니다. 3년째 되는 날 큰스님이 제안을 하시더군요. ‘판검사보다 불교를 해 봐라. 훌륭한 스승과 돈을 대줄 테니 불교 공부를 해라. 니가 크게 쓰일 날이 있을 것이다. 최대한 많은 것을 배워서 다음 세상에 전해라’라고 하시면서 휴정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휴정 선생님 문하에서 종범 스님과 같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배웠습니다.”
서울대 철학과에 다니다가 출가하신 성전암의 큰스님은 그에게 철학을 먼저 공부한 다음에 불교 공부를 하라고 권유했다. 한편 불교학의 대가였던 휴정 선생님도 소개해 주시고, 학비도 대 주시면서 공부 길을 열어 주신 고마움은 세세생생 잊을 수 없다. “성전암의 큰스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진태야, 니가 잘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큰스님 덕분에 불교학을 한 다음부터 화장실에 앉아 있어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밑에 흐르는 붓다의 궁극적인 메시지가 뭘까?’를 고민했습니다. 내가 먼저 제대로 알아야 쉽고 정확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팔만대장경이라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 불교는 경전의 숲도 깊고, 2600년 동안 발달해 온 불교 교리와 수행법도 그야말로 광대무변하여 수십 년을 공부하고 수행을 해도 자신 있게 불교에 대해 말하기가 쉽지 않다. 반열반에 드시기 직전까지도 법을 전하는 전도여행을 하셔놓고도 한마디도 설한 적이 없다는 것이 부처님이요, 안다고 입을 떼는 순간 불교와 삼만팔천리 멀어진다는 것이 조사들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불교 공부를 하면서 알긴 아는 것 같은데, 또 뭐가 틀렸는지는 알겠는데, 바른 것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환히 드러나지 않아 말할 수 없이 답답했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사춘기 때 붓다의 가르침을 그냥 아는 것 같았고, 아주 용감하게 법을 전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늘 제자리걸음이요, 하도 깜깜해서 설산동자가 나찰에게 몸을 던지면서까지 진리의 말씀을 듣고자 했던 심정이 든 적이 있었다...그도 나와 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몸과 마음이 불교의 교과서요, 불교는 수행체계이다 “수행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아주 오랫동안 참선 수행을 짬짬이 해 왔습니다. 십 수 년 전 우 에인다까 사야도를 뵈었습니다. 그분의 강의를 듣고 네다섯 명이 미얀마에 처음 따라가서 수행을 했습니다. 그때 충격을 많이 받았지요. 그리고 10년 전 교수직을 그만두고 미얀마에 가서 3년 동안 본격적으로 수행했습니다. 그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쌓였던 의문들이 풀리고, 내 스스로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내가 어디에서 막혔는지, 틀린 것은 알겠는데 맞는 것은 몰라 답답하던 것들이 하나하나 풀리면서 며칠 동안 펑펑 울었습니다. 농대 교수가 농사도 지어보고 경운기도 몰아보았을 때 농사에 대해 분명해지는 것처럼 새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미얀마에서 다시 태어났다. 설립 초창기부터 관여하여 애정이 깊었던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이런저런 인연에 얽혀 그만두게 된 것이 오히려 부처님의 가피로 다가왔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수행을 통해 마음이 평화로워지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말임을 알기 때문이다. “역경을 통하여 부처를 이룰지어다”라는 <보왕삼매론>의 주인공을 보는 듯해 환희로웠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욱 참되게 다가왔다. “불교는 수행체계입니다.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은 몸과 마음 관찰을 100%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불교의 교과서는 나의 몸과 마음이에요. 내 마음, 내 몸을 제대로 관찰하면 붓다의 가르침이 명료해집니다. 부처님은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보시고 누진통을 하셨습니다. 깨달음은 이 몸 그대로 열반적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는 붓다의 가르침이야말로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수행하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불교는 원수조차도 사랑할 수 있는 길이고, 불교의 수행체계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수행법에 자관(慈觀)과 비관(悲觀)이 있는데, 자관은 사랑을 보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친한 사람에게 사랑의 마음을 보내고, 그 마음이 우주에 꽉 차면 존경하는 사람에게 보내고, 그 다음에는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보내고, 나중에는 싫어하는 사람, 원수에게 보내는 것이다. 이 우주는 인드라망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자관을 보내고 또 보냈을 때 원수의 맺힌 마음도 풀어질 것이다. 물론 수행을 통해 서로 의지하고 관계 맺고 있는 연기의 이치를 확연히 보면 어찌 원수가 따로 있겠는가 싶다. 원수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인연을 지었을 뿐인데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진정한 평화, 아니 그렇듯 거창한 목표는 그만두고라도 이웃, 동료와 친절하고 따뜻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불교를 공부해야 하고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불교는 간화선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데, 저는 이게 문제라고 봅니다. 간화선은 도 아니면 모예요. 간화선이 체질적으로 맞는, 한마디로 근기가 높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행할수록 캄캄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선방이 극기훈련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쉽게 비유해서 100점도 되고 0점도 될 수 있는 간화선에 비해 위빠사나는 못해도 기본적으로 50점, 80점은 맞을 수 있는 수행체계이고,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더 적합한 수행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출가자는 물론이고 일반 불자들 역시 수레의 두 바퀴처럼 교리 공부와 수행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반 불자들이 주로 하는 기도 역시 사마타 수행으로 전환시켜 집중력을 기르면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수행을 통해 자기 판단력, 자기 능력을 발휘하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주인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개. 돼지가 책 읽고 수행하는 것 봤습니까?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는 말처럼 사람 몸 받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람 몸 받고 사람 짓을 해야지요.” 사람 몸을 받고 수행하지 않으면 축생 몸을 받은 것과 같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면서도 고무줄처럼 탄력적으로,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처럼 하고 있으니 더 큰 문제인 듯하다. 수행도 습관이다. 수행이 몸에 배게끔 해야겠단 각오를 새롭게 다져본다. 사실 실용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요즘처럼 변화무쌍한 세상에 수행은 필수적인 요소다. 수행을 하면 안 쓰던 뇌의 부분이 활성화되고 집중력이 강화되니 업무 능력, 학습 능력을 키우는 데 수행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치매에 걸려서 죽으면 절대 안 됩니다. 다음 생에 좋은 몸을 못 받습니다. 붓다께서도 당신의 죽음을 관찰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흔히들 잠결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이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정신을 바짝차리고 자신을 관찰하면서 자기 정신을 가지고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는 평소 이렇듯 불교를 바탕으로 바른 인생관을 가지고 사람 몸 받은 이 귀한 삶을 제대로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언해 준다. 전국의 불교대학에서 수많은 대중들과 만나고 스님들과 만나면서 수행과 계율 호지를 통한 새불교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한국불교의 희망은 계율 호지와 수행에 있다 “남방불교 공부하다 보니 알맹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불교는 지금 껍데기만 남아 있습니다. 대승불교운동이 이 땅에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수행체험을 통해서 가치 있는 세계를 경험한다면 달라질 것입니다. 색계만 올라가도 차원이 달라서 세속이 별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세속에 미련을 안 가질 것입니다.” 그는 현재 이교도와 경쟁하듯 급격히 세속화하고 있는 한국불교 최고의 처방은 수행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출가자가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세속을 그리워하는 것 같은 행태를 보이고, 그것은 그대로 지탄을 받게 되고 불교의 위해 요소가 되기 때문에 수행을 강화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수행을 하면 붓다의 위대한 가르침이 보이고 그분을 닮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수행한 만큼 즐겁고 편하고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세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일반 불자들도 그럴진대 부처님의 길을 온전히 따르겠노라 서원한 출가 수행자야 오죽하랴. “의식주 해결에 급급해 하는 스님들을 위해 글을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교가 수명이 길어야 하는데, 스님들의 잘못된 행태가 불교의 수명을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불교 정화라는 말을 하는데, 불교 정화가 아니라 불교계 정화입니다. 용어를 분명히 제대로 써야 합니다. 파계 행위는 불교계를 오염시키고 승속 양자에 모두 악업을 짓는 일입니다.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하며 대접 받으면서 너무 쉽게 살려다가 세상까지 어렵게 만들고 스스로도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젊은 스님들이 지금 조계종단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젊은 스님들에게 희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 ‘부모 형제 떠나 승복 입고 출가의 길을 걷고 있는데 인생을 낭비해야 되겠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많지요. 무늬만 승려인 분들이 참회하고 출가정신을 가지고 계율을 호지하고 수행하며 참 수행자의 길을 간다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밝지만, 그렇지 않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의 첫 책 <천당과 지옥은 번지수가 없다>는 수행으로 이끄는 책이다. 그가 이 책에서 수행의 원리를 찬찬히 밝혀놓은 것은 출가자들이 수행을 통해 다른 세계만 맛봐도 엉뚱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 수행을 통해 지극히 고요한 경계에 들어가 보았고, 그런 수행 체험을 한 다음부터는 붓다께서 하지 말라는 것의 이유를 알게 되고 자연스레 하지 않게 되었기에…. 연말연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새해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시기, “수행을 하면 저절로 계율을 지키게 되고, 붓다의 위대한 가르침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용맹정진, 완전한 깨달음을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성취하고 행복해진다”는 그의 말을 가슴에 품고 새해에는 나부터 열심히 수행해서 붓다를 제대로 따르리라 기원 또 기원…. ■김진태 교수는 저자 김진태는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와 전국의 사찰에서 붓다의 바른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세상의 평화와 사람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거침없는 쓴 소리로 불교계는 물론이고 기성종교의 잘못된 모습을 일깨워 호법신장으로 불린다. 영남대학교 법학과 졸업, 동대학원 철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 석사과정 수학,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석·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절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대학 시절에도 불교와 수행에 관심이 많았다. “불교 공부를 해서 세상에 전하라”는 파계사 성전 큰스님의 부촉을 받아 본격적으로 불교학을 전공, 철학과 심리학 등 인접 학문을 아우르며 불교학의 지평을 넓혔다. 불교학을 연구하고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면서 마치 은산철벽에 부딪치듯, 고뇌하다가 수행을 통해 그동안의 많은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오래 전부터 국내에서는 호두마을, 봉인사, 다보수련원 등에서 위빠사나와 사마타 수행을 해 왔고, 10여 년 전부터 매년 겨울이면 미얀마의 수행센터에서 수행을 해 오면서 수행 지도를 하고 있다. “불교는 수행체계로서 불자들은 누구나 수레의 두 바퀴처럼 교학과 수행을 함께해야 한다, 불교계를 정화하는 최고의 처방이 수행”이라고 강조하는 필자는 이 책에서 불교를 바탕으로 한 가치관 확립, 수행과 계율 호지를 통한 새 불교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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