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낮술>을 봤다.
제작비가 1,000만원 밖에 안 들었고, 조명 살 돈이 없어서 낮에만 찍었다는 영화 치고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영화였다.
이 영화가 홍보로 내건 문구는 이거다.
"술과 여자의 공통점 - 남자라면 거절할 수 없다?!"
역시 영화도 술과 여자에 대한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정선이라는 낯선 곳에서 만난 젊고 예쁜 여자의 유혹. 주인공이 아니라 어떤 남자라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자는 '술 한잔 사달라'는 진부하지만 저항할 수 없는 부탁으로 주인공을 유혹한다.
결국 주인공은 '술과 여자에 빠진' 덕분에 가방과 지갑까지 털리고 바지까지 벗긴 채로 추운 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된다.
마치 옛사람들의 "술과 여자 좋아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경고를 입증하는 것처럼...
"술 한잔 하자"라는 말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매우 크고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자끼리의 "술 한잔 하자"는 당신과 인간적으로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비즈니스적인 관계라면 당신과 뭔가 거래를 하고 싶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내 돈이 탐나서 일수도...)
또, 권력관계를 확실히 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선배가 후배에게 술을 사겠다고 하는 경우처럼...
어쨌든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남녀 사이에서의 "술 한잔 하자"는 거의 십중팔구 섹스와 관련된 암시이다.
남녀가 단둘이 술을 마시다 보면 결국 뻔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이성으로부터 "술 한잔 하자"라는 말을 들으면 잘 판단해야 한다.
이 말은 "나 너랑 자고 싶다"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으니까...
물론 이성이라도 직장 상사나 거래처 직원의 "술 한잔 하자"는 그냥 비즈니스적인 언사일수도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인의 일그러진 술 문화가 내내 거슬렸다.
속이 쓰려서, 혹은 감기가 걸려서 안마시겠다는 주인공에게 주위 사람들은 반 위협을 해가며 술을 강요한다.
내성적이고 순진한 주인공은 거절도 못하고 연거푸 원샷을 한다.
이런 모습은 비단 영화에서뿐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자기 주량은 자기가 잘 안다. 왜 그만 마시겠다는 사람을, 혹은 천천히 마시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강요하는지...
나는 이것을 일그러진 술 문화라고 부른다.
나 역시 한국이라는 나라가 대체로 살기 좋은 곳이지만,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술문화다.
특히 직장에서의 술문화.
아직도 회사에서는 회식이라는 문화가 존재하고, 회식 자리에서는 으레 술잔이 돌아간다.
술잔을 받으면 빠른 시간안에 비우고 다시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위생상으로도 최악인 술잔 돌리기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니, 술을 강권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 생겼으면 좋겠다.
오랫만에 괜찮은 영화를 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좋은 영화를 결정짓는 것은 제작비도 유명배우도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아이디어고 스토리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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