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향기

윤편(輪扁)의 일화 -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다

파라리아 2009. 5. 17. 01:24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윤편(輪扁 - 수레바퀴 깎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편이라는 사람)이 대청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대청 위를 쳐다보며 환공에게 물었다.

 

"대왕께서 읽고 계신 것이 무슨 책입니까?"

 

"성인(聖人)의 말씀이니라."

 

"그 성인은 지금 살아 계십니까?"

 

"벌써 돌아가셨느니라."

 

"그렇다면 대왕께서 지금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입니다."

 

환공이 벌컥 화를 내면서 말했다.

 

"과인이 책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나 만드는 네놈이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제가 하는 일의 경험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게 정확하게 깎는 것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 입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더 깎고 덜 깎는 그 어름에 정확한 치수가 있을 것입니다만 제가 제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저로부터 전수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의 성인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깨달음은 책에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읽고 계신 것이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도(道)는 책에 있다 하여 책을 귀히 여긴다. 그러나 책은 말[語]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그렇다면 말이 귀한 것이다. 말이 귀한 까닭은 말에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또 뜻은 그 나타내려는 무엇이 있으니, 나타내려는 그 무엇은 말로써는 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말을 귀히 여김으로써 책을 지어 전하고, 그 책을 귀히 여기지만 그것은 귀히 여길 것이 못 되는 것이다. 그것이 귀하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책에서 보아서 볼 수 있는 것은 사물의 형색(形色) 뿐이요, 또 말[語]에서 들어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사물의 명성(名聲) 뿐이다. 그런데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형색과 명성으로써 저 도의 진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러나 형색과 명색으로써는 저 도의 진실을 얻을 수 없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도리어 모른다.[知者不言, 言者不知 - 노자 56장]"고 하는 것이다.

 

그렇건만 세상이 어찌 이것을 분별할 수 있겠는가?

 

 

- 장자 외편 <천도(天道)> 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