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남자와 여자 사이에 어떠한 사랑이 가능한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 일반적인 패턴에 얽매이지 않는, 남녀 사이의 관계에 대한 희망이 있는지도 말씀해 주십시오.
OSHO: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종교가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종교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파괴해왔다. 종교가 그것을 파괴하는 이유가 있다. 만일 사람들의 삶에서 사랑의 경험이 만족스럽다면, 그대는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별로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일요일마다 아침 일찍 사랑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누가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는 바보들에 대해 신경쓰겠는가? 만일 사람들의 삶에서 사랑의 경험이 엄청나게 만족스럽고 아름답다면 그들은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신경쓰지 않을 것이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철학이 진실인지 아닌지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 자신에게 너무나 만족해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나는 길을 지나다가 두 연인이 서로 껴안고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 때 나는 매우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들은 틀림없이 어딘가 굉장히 멋진 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결혼을 만들어내어 그대의 사랑을 파괴해왔다. 결혼은 시작이 아니라 끝이다. 사랑이 끝나는 것이다. 이제 그대는 남편이고, 그대의 연인은 아내이다. 이제 그대들은 서로를 지배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정치이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이제 모든 소소한 일들이 다툴 이유가 된다.
결혼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조만간 그대는 여자에게 싫증날 것이고, 여자는 그대에게 싫증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거기에는 아무런 잘못된 점도 없다. 그래서 나는 결혼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혼은 온 세상을 부도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와 잠자리를 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지만, 단지 그들이 부부이기 때문에 계속 잠자리를 한다. 이것은 추하고 역겨운 일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매춘이라고 부른다. 어떤 남자가 매춘부에게 갈 때는 적어도 솔직하다. 그는 어떤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는 여자를 사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에서는 한 여자를 통째로 구매한다. 그것도 그 여자의 인생을 통째로 구매한다. 모든 남편과 아내는 예외없이 새장에 갇힌 신세이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 쓴다. 하지만 심지어 이혼이 허용되는 나라에서조차 사람들은 파트너를 바꾼 뒤 며칠 내에 깜짝 놀란다. 그들이 찾은 다른 여자 또는 다른 남자는 결국 그들이 헤어졌던 파트너와 똑같은 복사본으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나는 여덟번 결혼한 어떤 남자에 대해 들었다. 물론 그는 캘리포니아에 살았을 것이다. 그가 여덟번째 결혼했을 때, 이틀이 지난후 그는 그가 이 여자와 전에 결혼한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자들을 바꾸어서 얻은 게 무엇인가? 결국 똑같이 판에 박힌 생활로 돌아올 뿐인 걸."
결혼에서의 안정은 부자연스럽다. 일부일처제는 부자연스럽다. 인간은 본성상 다혼(多婚)의 동물이다. 그리고 지성이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다혼으로 살 것이다. 그대는 이탈리아 음식만 계속해서 먹을 수 없다. 때때로 중국음식도 먹고 싶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결혼과 결혼 증명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를 원한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는 유일한 이유는 법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만이 유일한 법칙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라야 그대가 묻고 있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랑이 사라지는 순간 서로에게 작별인사를 하라. 다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랑은 존재로부터의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바람처럼 찾아왔고, 바람처럼 떠나갔다. 그들은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그들은 헤어지겠지만 그들이 함께 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연인이 아니라면 친구로 남을 수 있다. 대부분 연인들은 헤어질 때 적이 된다. 사실 그들은 헤어지기 이전에 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헤어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만일 두 사람이 단지 연인일 뿐만 아니라, 사랑의 에너지를 명상적인 상태로 변형시키려는 명상가라면... 그리고 그것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한 나의 모든 접근법이다. 그것은 엄청난 에너지이다. 그것은 생명이다. 만일 그대의 여자와 사랑의 행위를 나눌 때, 마치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이 완전히 고요하고 마음 속에 아무런 생각도 지나가지 않는 침묵의 순간 속으로 둘 다 녹아들어갈 수 있다면... 그 때 그대는 처음으로 사랑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한 관계는 온 생애 동안 남아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 이상 단지 조만간 시들어버릴 생물학적인 끌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에게는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그대의 여자는 그대의 사원이 되었다. 그대의 남자는 그대의 사원이 되었다. 그대의 사랑은 그대의 명상이 되었고, 명상은 계속 자라날 것이며, 그것이 자라날 때 그대는 더욱 더 기쁨에 차고 더욱 더 활기있게 되고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그대는 여자와 함께 있어야 할 어떠한 관계도 어떠한 구속도 없다. 하지만 누가 기쁨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기쁨으로 충만할 때 누가 이혼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기쁨이 없고 단지 절망과 하루 24시간의 악몽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곳과 전 세계에 있는 나의 사람들은 사랑이 단지 뜀틀(jumping board)일 뿐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사랑의 앞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 그것은 두 사람이 더 오랜 기간 친밀한 상태일 때만 가능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대에게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은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제 그것은 그 사람의 생물학적이거나 육체적인 측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는 영적인 교감 안으로 들어왔다.
섹스를 영성(靈性)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접근법이다. 그리고 만일 두 사람이 연인이면서 명상가라면, 때때로 그대가 중국음식점에 가든지 혹은 그녀가 컨티넨탈 레스토랑에 가든지 서로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대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가 때때로 다른 사람과 있으면서 행복을 느낀다면 거기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그대는 그녀가 행복한 것에 대해 기뻐할 것이다. 그대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직 명상가만이 질투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인이 되어라. 그것은 좋은 시작이다. 하지만 끝은 아니다. 더욱 더 명상적일 수 있도록 노력하라. 그리고 서둘러라. 허니문이 끝나는 날 그대의 사랑도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상과 사랑은 함께 가야 한다. 만일 연인들이 동시에 명상가들인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남녀 사이의 이 끝없는 괴롭힘, 잔소리, 질투,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문제들은 사라질 것이다.
명상 없는 사랑은 어느 순간에라도 미움으로 바뀔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러니 조심하라. 하지만 명상과 함께 하는 사랑은 더욱 더 깊어지고 더욱 더 강렬해질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두 사람은 함께 있으면 너무나 조화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건이 아니다. 어느날 한 파트너가 이렇게 결심할 수도 있다. "이제 이 교차로에서 당신을 떠날 것입니다. 당신이 해준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 나는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계속해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대가 결혼하거나 이혼한다는 것을 결정해 줄 법원 따위는 필요치 않다. 우리는 얼마나 미친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우리의 사랑조차 자유롭지 않다니.
그리고 내가 사랑이 우리의 자유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프리섹스 구루"라고 비난한다. 확실히 나는 사랑의 자유를 지지한다. 그러니 어떤 점에서 그들은 옳다. 나는 섹스가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단지 두 사람이 합의하기만 한다면 자유롭게 섹스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는 단지 그 순간을 위한 것일 뿐이다. 미래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필요치 않다. 그러한 약속들은 그대의 목에 두르는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그 약속들은 그대를 죽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하지 말고, 단지 이 순간을 즐겨라. 만일 다음 순간에도 그대들이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면, 그대들은 더욱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관계(RELATIONSHIP)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나는 관계맺음(RELATEDNESS)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대는 관계맺을 수 있지만, 관계를 만들지는 말라. 만일 그대의 관계맺음이 평생의 과정이 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훨씬 더 좋은 일이다. 아마도 그 사람은 그대에게 맞는 짝이 아니었을 테니 헤어지는 편이 낫다. 어딘가에는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대에게 맞는 사람이 누군인지 찾아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부도덕하다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부도덕한 것이다. 그들이 하고 있는 짓이 부도덕한 것이다.
- 오쇼, <The Last Testament> Vol.1, CH.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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