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역사가이자 저명한 학자로 잘 알려진 사람이 어느 시골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거기에서 그는 닥터(doctor)라고 불리어졌다. 그 마을에는 늙은 우체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그 닥터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그가 어떤 종류의 닥터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날 그는 그 학자를 찾아가 물었다.
"선생님은 무슨 닥터(doctor)이십니까?"
그러자 그 학자가 말했다.
"철학 닥터(Doctor of Philosophy)요."
하지만 늙은 우체부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리둥절해 하다가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그런 병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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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듣고 웃지 마라. 그 늙은 우체부의 접근 방식은 옳았다. 철학은 일종의 병이다. 물론 철학박사가 의사(doctor)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 병의 완전한 희생물이다.
철학은 특수한 병이 아니다. 그래서 그대는 그것을 하나의 우연한 사례로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과 함께 태어났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다. 모든 인간은 다소간 그것의 희생자다. 생각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내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악순환만 되풀이하게 된다. 그대가 많이 움직여서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전문가가 되었다고 해도 그대는 그 어디에도 이르지 못한다.
이 점은 깊이 이해되어져야 한다. 만약 그대가 이것을 이해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다면 그대는 명상 속으로 뛰어들 수 없다. 명상은 접근에 대해, 철학에 대해 완전히 반대적인 입장이다. 철학이 사고작용을 뜻한다면 명상은 생각없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들은 완전히 반대극이다.
의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찾으려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철학은 어떤 해답도 주지 못한다. 반면에 과학은 어떤 해답을 준다. 종교 역시 나름대로의 해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철학은 어떤 해답도 줄 수 없다. 철학에서 보여주는 모든 해답들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그대가 그것들을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 많은 의문들이 쏟아져 나올 뿐 알맹이는 아무 것도 없다.그래서 철학의 모든 답들은 더 많은 질문으로 연결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끝없이 계속된다.
과학은 어떤 결론에 이른다. 과학은 사색보다는 실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색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그 기초는 어디까지나 실험이다. 과학이 어떤 해답에 이르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3세기 동안 과학은 몇가지 결론을 발표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훨씬 오래 전부터 계속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왔지만 아무런 대답도, 한 가지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생각이라는 것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실험을 하는 데 보조수단으로 생각을 이용한다면 그 때는 뭔가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과학은 어떤 해답들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 역시 해답을 갖고 있다. 종교 또한 하나의 실험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대상에 대한 실험이라면 종교는 주체에 대한 실험이다. 그 둘 다 실험이 기초가 된다. 이 둘 사이에 철학이 있다. 어떤 실험도 하지 않고 단지 순수한 사고 작용, 추상적인 사념 활동만을 하는 것이다. 그대는 계속할 수 있다. 얼마든지 그것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다. 추상적인 사고 작용은 그저 생각의 유희일 뿐 끝이 없다. 그대는 즐길 수 있다. 그 여행을 만끽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거기에 목표 지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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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을 기억하라. 그대는 신에 관해서 계속 생각할 수 있다. 영혼에 관해서, 사후 세계에 관해서 그대는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대가 단지 생각만으로 신에 대해 안 것이 있다면 그것을 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 될 것이다. 그대는 신에 관하여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그 '관하여'란 말이 웃기는 말이다. 그대는 신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에 관하여는 알 수 없다. 바로 그 '관하여'가 철학을 만들어 낸다.
어떻게 그대는 신에 관해서 알 수 없는가? 예를 들면 그대는 사랑에 관해서 알 수 있는가? 그대는 사랑을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랑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 그 '관해서'라는 것은 다른 어떤 사람의 지식을 빌려온다는 뜻이다. 그대가 타인의 의견을 수집하고 종합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에 관해서 어떤 것을 안다." 그 '관해서'에서 비롯된 모든 지식은 거짓이며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대는 그것에 의해 속아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신을 알 수 있다. 그대는 사랑을 알 수 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관해서'라는 것은 잊어버려라. 그 '관해서'가 철학이다. 우파니샤드가 뭐라고 말했다. 베다가 뭐라고 말했다. 성경이, 코란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대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대에게는 모든 것이 '관해서'가 될 뿐이다. 그 지식이 그대의 체험이 되지 않는 한 그것은 쓸모없는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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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이라는 말을 기억하라. 삶의 모든 문제는 실존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저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대는 생각만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삶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살아감을 통해서 미래가 열린다. 생각을 통해서는 어떤 미래도 열리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조차 닫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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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제는 오직 그대가 실존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때만이 해결될 수 있다. 생각 속에서 날아다니면 그대는 뿌리에서 멀리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그대가 멀어질수록 해결의 실마리는 점점 사라진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된다. 모든 것이 더욱 얽히고 설키게 된다. 그리고 얽힐수록 그대는 더 많이 생각할 것이다. 그대는 존재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나갈 것이다. 생각을 경계하라!
- 오쇼, <탄트라 비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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