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에게 동갑내기 남자친구가 생겼다. 애인이 아니라 성별이 '남자'인 친구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약간의 호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는 평범한 듯하면서도 이미지 좋은 청년이었고 내가 하는 말을 척척 알아듣고 센스 있게 대답하는, 꽤 말이 잘 통하는 남자였으니까.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놓았고 잠깐의 설렘 이후 나는 그를 '친구'로 규정지었다. 나를 편하게 생각한 나머지 개인적인 연애사와 실없고 푼수 같은 모습이나 여자보다 더 섬세하고 예민한 취향 같은 것들을 너무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사람, 더 이상 호기심이 들지 않는 사람에게 싫증을 느끼는 건 남자나 여자나 다 마찬가지인가 보다. 나에게 그는 '게이친구' 같은 느낌이었고, 그 역시 나를 그렇게 규정지은 것 같았다. "난 술 잘 먹는 여자는 싫더라" "난 자아 강하고 자기 고집 센 여자보다는 순진하고 여성스러운 여자한테 끌려" "여자 좀 소개시켜줘" 같은 말들을 내 앞에서 수시로 했으니 말이다.
이성친구는 동성친구와 다른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여자들의 만성적인 남자 고민에 대해 남자 입장에서 솔직하게 충고해주고, 화장법이나 다이어트에 대해 운운하지 않고,, 옆에 있으면 든든하고 왠지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런 이성친구와의 관계는 두고두고 즐길 만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주 갑자기 터졌다. 새벽까지 야근하던 어느 날, 그는 우리 회사 근처에 마침 약속이 있었다며 나를 태우러 왔다. 거의 집 앞까지 왔을 때 그가 문득 "이야기나 더 하고 들어가자" 하며 차를 세우는 것이다. 시간도 늦었는데 빨리 집에 가자며 그를 마주본 순간, 앗, 그 눈빛, 긴장된 어깨, 약간 내 쪽으로 기울인 몸, 애매한 위치의 손……. 이 나이 정도 되면 알게 된다, 저 자세가 무엇을 뜻하는지!
당황한 내가 재빨리 말했다. "난 너처럼 마음 맞는 친구가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우린 사소한 설렘이나 욕망 같은 걸로 어렵게 얻은 '친구'를 잃지 말자."
"넌 정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정색하며 그가 물었다. "남자들이 여자한테 연락해서 놀아주고 받아주는 이유는 단순해. 너랑 사귀고 싶든지, 아니면 자고 싶든지."
그의 말에 따르면, 내가 실연의 고통을 토로할 때나 들들 볶는 상사 욕을 할 때나 남자친구와 싸워서 속상할 때 술잔 나눠들고 토닥토닥 등 두드려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남자'친구'들이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얘랑 잘 수 있을까, 어느 시점에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면 좋을까, 그나저나 얜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말이 많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는? 넌 나를 순수하게 친구라고 생각했던 거야? 정말 순수하게?"
아. 그러고 보니 나는 그 동안 그가 하루에 몇 번씩이나 보내오는 문자에 성실하게 답하고, 그가 들르라는 술자리에 거의 무조건 참석했고, 얼굴 보자고 하면 바로 달려나갔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그랬다. 그건 가장 친한 동성친구와도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내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그의 진심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남녀 사이의 미묘한 성적 긴장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말 끌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지 않았을까? 나는 정말 남녀 사이에 '순수한 우정'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던 것일까. 아니면 '순수한 우정'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놓았고 잠깐의 설렘 이후 나는 그를 '친구'로 규정지었다. 나를 편하게 생각한 나머지 개인적인 연애사와 실없고 푼수 같은 모습이나 여자보다 더 섬세하고 예민한 취향 같은 것들을 너무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사람, 더 이상 호기심이 들지 않는 사람에게 싫증을 느끼는 건 남자나 여자나 다 마찬가지인가 보다. 나에게 그는 '게이친구' 같은 느낌이었고, 그 역시 나를 그렇게 규정지은 것 같았다. "난 술 잘 먹는 여자는 싫더라" "난 자아 강하고 자기 고집 센 여자보다는 순진하고 여성스러운 여자한테 끌려" "여자 좀 소개시켜줘" 같은 말들을 내 앞에서 수시로 했으니 말이다.
이성친구는 동성친구와 다른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여자들의 만성적인 남자 고민에 대해 남자 입장에서 솔직하게 충고해주고, 화장법이나 다이어트에 대해 운운하지 않고,, 옆에 있으면 든든하고 왠지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런 이성친구와의 관계는 두고두고 즐길 만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주 갑자기 터졌다. 새벽까지 야근하던 어느 날, 그는 우리 회사 근처에 마침 약속이 있었다며 나를 태우러 왔다. 거의 집 앞까지 왔을 때 그가 문득 "이야기나 더 하고 들어가자" 하며 차를 세우는 것이다. 시간도 늦었는데 빨리 집에 가자며 그를 마주본 순간, 앗, 그 눈빛, 긴장된 어깨, 약간 내 쪽으로 기울인 몸, 애매한 위치의 손……. 이 나이 정도 되면 알게 된다, 저 자세가 무엇을 뜻하는지!
당황한 내가 재빨리 말했다. "난 너처럼 마음 맞는 친구가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우린 사소한 설렘이나 욕망 같은 걸로 어렵게 얻은 '친구'를 잃지 말자."
"넌 정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정색하며 그가 물었다. "남자들이 여자한테 연락해서 놀아주고 받아주는 이유는 단순해. 너랑 사귀고 싶든지, 아니면 자고 싶든지."
그의 말에 따르면, 내가 실연의 고통을 토로할 때나 들들 볶는 상사 욕을 할 때나 남자친구와 싸워서 속상할 때 술잔 나눠들고 토닥토닥 등 두드려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남자'친구'들이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얘랑 잘 수 있을까, 어느 시점에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면 좋을까, 그나저나 얜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말이 많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는? 넌 나를 순수하게 친구라고 생각했던 거야? 정말 순수하게?"
아. 그러고 보니 나는 그 동안 그가 하루에 몇 번씩이나 보내오는 문자에 성실하게 답하고, 그가 들르라는 술자리에 거의 무조건 참석했고, 얼굴 보자고 하면 바로 달려나갔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그랬다. 그건 가장 친한 동성친구와도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내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그의 진심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남녀 사이의 미묘한 성적 긴장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말 끌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지 않았을까? 나는 정말 남녀 사이에 '순수한 우정'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던 것일까. 아니면 '순수한 우정'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일까.
출처 : 김지현의 에로틱칵테일
글쓴이 : 김지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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