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향기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았다

파라리아 2011. 10. 13.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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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독교의 부활은 가능하지 않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죽지않았다. 유대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려면 적어도 48시간이 걸린다. 어떤 경우에는 십자가 위에서 6일을 버틴 사람도 있었다. 예수는 여섯시간만에 십자가에서 내려왔다. 따라서 그가 십자가 위에서 죽었을 가능성은 없다. 예수를 좋아하는 어떤 부자와 본디오 빌라도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 가능하면 금요일 늦은 시각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자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토요일은 유대인들의 안식일로 모든 일을 금하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금요일 저녁이 되면 모든 일손을 놓곤 했다.


부자와 빌라도의 거래에 따라 예수는 오후 늦게 십자가못에 박혔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예수는 굉장히 많은 양의 피를 흘려서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죽지는 않았다.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린 사람들은 예수를 동굴로 피신시켰다. 안식일이 끝나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제자들이 예수를 몰래 빼돌린 것이었다. 제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예수를 유대 지방 밖으로 피신시켜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예수는 유대 지방 밖으로 빠져나가 건강을 회복한 다음 인도로 갈 수 있었다. 인도로 간 예수는 카슈미르 지방에서 112살의 장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모세도 카슈미르에서 죽고 예수도 카슈미르에서 죽은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아주 아름다운 우연의 일치였다. 나는 그들의 무덤을 찾아가 보았다. 그들의 무덤을 보면 무덤의 주인공이 이슬람교인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카슈미르는 이슬람지역이다. 이슬람 교인의 무덤은 모두 메카를 향한다. 하지만 내가 찾아간 무덤들은 메카를 향해 있지 않았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이슬람교인의 무덤은 메카를 향해 있다.


카슈미르에서는 이들 두 개의 무덤만이 메카를 향해 있지 않다. 무덤의 비문은 히브리어로 쓰여 있는데 이는 이슬람의 무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히브리어는 카슈미르 이슬람교인들의 언어가 아니다. 비문 속의 예수 이름은 당시 유대인의 발음에 따라 정확하게 ‘조슈아Joshua'라고 적혀 있다. ’예수Jesus'라는 이름은 조슈아를 기독교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무덤은 틀림없이 예수의 것이었다.


한 가족이 모세와 예수의 무덤을 관리하고 있었다. 두 무덤은 파할감Pahalgam이라는 지역에 있는데 서로 가까운 곳에 있어 한 가족이 대대로 모세와 예수의 무덤을 관리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대대로 관리인 가족은 유대인이었다. 나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 무덤의 비명을 판독할 수 있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던 도중에 한 지파를 잃어버렸는데 이 지파를 찾기 위해 카슈미르 까지 오게 되었다. 모세는 다른 지파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사막에서 잃어버린 지파를 걱정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모습을 보고 모세는 잃어버린 지파를 찾아 길을 떠났다. 모세는 잃어버린 지파를 카슈미르에서 찾았다. 그래서 카슈미르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이다. 지금 그들이 이슬람교인이 된 것은 아랍의 이슬람정권이 강제로 개종시켰기 때문이다. 하여튼 모세는 그들과 함께 살다가 그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예수도 카슈미르로 갔다. 당시 모세가 카슈미르에서 잃어버린 지파를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예수는 유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가면 사람들이 다시 십자가에 매달 것이었다. 예수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정서를 소유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카슈미르뿐이었다. 따라서 예수가 카슈미르로 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에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이 신의 독생자라는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그렇지 않으면 카슈밀으의 유대인들도 그를 십자가에 매달려고 들 것이었다. 예수는 ‘나는 메시아다’라는 생각도 버렸다. 그는 파할감에서 소수의 친구들과 제자들과 살다 갔다.

파할감이라는 지명은 예수에서 나왔다. 예수는 자신을 ‘목자’라고했다. 파할감은 ‘목자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파할감은 예수와 그의 친구들이 조상의 무덤 주위에 만든 부락이었다. 예수는 죽을 때까지 유대인으로 살았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 들어 본 일이 없었다.


유대 지방에 남은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꾸며냈다. 예수의 부활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입증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부활을 꾸며낸 제자들 쪽도 없는 예수를 만들어낼 수 없었으며,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느 쪽에서도 딱히 반박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린 뒤 동굴속에 넣고 커다란 바위로 입구를 막았다. 게다가 입구에서는 로마병사가 스물네시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빼돌린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처음부터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반대했다. 빌라도는 예수를 보자마자 그에게 죄가 없음을 알아보았다. 예수는 약간 이상한 사상의 소유자이긴 했으나 범죄자는 아니었다. 좀 이상한 사상을 가르친다고 해서 다른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사람이 “나는 신의 유일한 아들이다”라고 떠든다해도 뭐가 문제인가? 왜 신경을 써야하는가? 누가 “나는 메시아다. 신의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라고 떠들면, 듣고싶은 사람은 듣고 듣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듣지않으면 그만이다. 그런 사람을 굳이 십자가에 매달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예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알게되었다. 그래서 카슈미르에서는 지인들과 조용히 기도하며 살았다. 더 이상 세상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았다. 카슈미르는 유대지방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유대지방의 예수제자들 사이에서는 부활 이야기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점에서 부활이라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나, 사실 이는 부활이라기 보다는 모종의 합의였다. 분명 예수는 십자가위에서 죽지 않았다. 동굴에서도 죽지 않았다. 그는 살만큼 살다갔다.



- 오쇼, <Beyond Psychology> CH. 13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