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향기

사람은 왜 지루함을 느끼는가

파라리아 2011. 10. 12. 00:26



[질문] 사랑하는 오쇼, 
     

저는 제가 스스로에 대해 그저 지루해하고 있으며, 아무런 활기도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삶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 삶 속의 기쁨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봅 루카(Bob Luka).

 

요즘 새로 나온 진정제가 있는데 아무 효과가 없어서 자꾸만 먹어 보게 된다고 한다.

 

그것을 시험해  보라! 시험해 보고, 시험해 보고, 또 시험해 보라. 미국인이 되라!

 

그러나 세 번 이상은 하지 말라. 시험해 보고, 시험해 보고, 또 시험해 보라. 그리고 멈춰라.

 

왜냐하면 바보가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말한다

 

저는 제가 스스로에 대해 그저 지루해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발견이다.

 

그렇다. 위대한 발견이다! 정말 드문 사람들만이 자신이 지루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은 지루하다. 정말로 지루하다. 그들 자신만 빼고는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이 지루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위대한 시작이다. 이제 여기에 관한 몇 가지 점이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은 지루함을 느끼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것은 커다란 특권이다. 그것은 인류의 존엄성의 일부이다.

 

그대는 지루한 물소나 지루한 당나귀를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지루하지 않다.

 

지루하다는 것은 그대가 살고 있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위대한 사건이 될 수 있다.

 

"나는 지루하다. 뭔가가 일어나야 한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위대한 사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그대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좋은 징조이다. 좋은 시작이다.

 

그것은 매우 밝은 시작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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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은 지루함을 느끼는가?

 

사람이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타인들에 의해서 주어진 죽은 패턴을 따라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에 따라 살기 시작하라.
 

 

 

진짜 사람만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가짜 사람은 지루함을 느끼게 되어 있다. 

 

기독교인들은 지루해질 것이다.

 

자이나교인은 지루해질 것이다.

 

파르시교인(9)은 지루해질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지루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이다. 진짜 삶은 눌러둔 채, 그들은 거짓 삶을 살기 시작한다.

 

지루함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가짜 삶이다.

 

그대가 만약 정말 그대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면, 그대는 결코 지루해지지 않을 것 이다.  
 

(9)파르시교(Parsim) : 이슬람교도에 의해 박해로 8세기에 현재의 인도 구자라트주 해안지방에 이주한 조로아스터교.

 

후에 봄베이를 중심으로 상공업을 크게 일으켜 인도 경제계에 커다란 세력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집을 떠나던 그 날, 나의 부모, 아버지, 가족들 모두는 내가 과학자가 되기를 원했다.

 

과학자에게는 더 나은 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적어도 의사나 기술자가 되기를 바랬다.

 

 

 

나는 절대적으로 거절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루한 삶을 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로서 저는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명예와 돈과 권력과 명성을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깊은 속에서는 지루한 채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원래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아무 전망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철학은 대학에서 가장 초라한 과목이다. 그들은 내가 미래를 낭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돈이나 권력, 명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본래 그대가 무엇을 원하느냐의 문제이다.

 

결과에 신경쓰지 말고 그것을 하라. 그 때 그대의 지루함은 사라질 것이다.

 

 

 

아마도 그대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르고 있을 것이다.

 

그대는 옳다고 하는 방식대로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대는 정해진 방식대로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루함의 초석이다.
 

 

 

전 인류는 지루하다. 왜냐하면 신비가가 되었어야 할 사람이 수학자가 되어있고, 수학자가 되었어야 할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 있으며, 시인이 되었어야 할 사람이 사업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른 곳에 가있다. 아무도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다.

 

그대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만약 그대가 위험을 무릅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지루함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그대는 묻는다. 봅 루카

 

저는 제가 스스로에 대해 그저 지루해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대가 지루해하고 있는 것은 자신에 대해 진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자신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존재를 존중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그대는 말한다.

 

 

저는 아무런 활기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활기를 느낄 수 있겠는가?

 

활기란 그대가 원했던 것을 할 때에만 흘러 넘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빈센트 반 고흐(10)는 그림을 그리며 너무나도 행복해 했다.

 

한 점의 그림도 팔리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동생이 그에게 보내 주고 있는 돈은 굶어 죽지 않을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4일은 굶고 3일은 먹었다.

 

그 4일간을 그는 굶어야 했다. 왜냐하면 캔버스와 물감과 붓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무척 행복했다. 활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10)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 네덜란드의 화가. 화가가 되기 전에는 화상점원, 목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였다.

 

파리라는 대도시의 생활에 싫증을 느껴 1888년 2월 보다 밝은 태양을 찾아서 프랑스 아를로 이주한 뒤부터 죽을 때까지의 약 2년

 

반 이야말로 고흐 예술의 참다운 개화기였다. 그는 그 곳의 밝은 태양에 감격하였으며 '해바라기'와 같은 걸작을 제작하였다.

 

고갱에게 그 곳으로 올 것을 끈질기게 권유하여 고갱과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으나 성격차이가 심하여 순조롭지 못하였다.

 

그해 12월 고흐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켰으며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 후 고흐의 생활은 발작과

 

입원의 연속이었으며, 발작이 없을 때에는 정신없이 그림을 그려댔다. 한때 건강회복으로 발작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듯하였으나

 

다시 쇠약해져 끝내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겨우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자살을 했다.

 

 

 

그러나 그의 자살은, 봅 루카, 그대의 소위 삶보다 훨씬 낫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것을 그린 후에 자살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의 오랜 염원이었던 석양의 그림을 끝마쳤을 때, 그는 이런 편지를 썼다.

 

"나의 일은 끝났다.

 

나는 충족되었다.

 

나는 무한한 만족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나간다." 

 

 

 

그는 자살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자살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전체적으로 살았다. 그는 삶의 양초의 양쪽 끝에 동시에 불을 붙여 강렬하게 불태웠다. 
 

 

 

봅 루카. 그대는 백 년을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삶은 단지 바싹 메마른 뼛조각과 같을 것이며, 쓸모 없는 짐에 불과할 것이다.

 

 

 

그대는 말한다.

 

 

당신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삶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 삶 속의 기쁨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대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대의 삶의 패턴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말을 오해하지 말라.

 

내가 그대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대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거부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 자신의 방식에 따라 그 말을 해석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해가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화성인이 맨하탄에 비행접시를 착륙시킨 뒤, 밖으로 나서기가 무섭게 걸인이 구걸을 하고 나섰다.
 

 

 

"선생님." 걸인이 말했다.

 

"1다임(dime)(11)만 주십쇼"  (11)다임(dime) : 미국 화폐 단위, 10센트.
 

 

 

화성인이 물었다.

 

"1다임이 뭐요?"
 

 

 

걸인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맞아요, 1쿼터(quarter)(12)만 줘요"   (12)쿼터(quarter) : 미국 화폐 단위, 25센트.

 

 

 

나는 그대가 받아들인 의미의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대에게 짐 지워진 모든 것들을 거부하라. 그것들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대가 피안으로부터 가져온 내면 깊은 곳의 핵 받아들여라.

 

그때, 그대는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기쁨의 폭발이 일어난다.

 

그대의 정수가 흐르기 시작하고, 삶은 정말로 지복에 넘치는 것이 된다.

 

 

 

 

한 젊은이가 혼수 상태에 빠졌고 친구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

 

땅속에 묻히기 직전에 그는 살아 있다는 징후를 나타냈다.

 

 

 

그는 살아났고 죽은 느낌이 어땠는지 질문을 받았다. 

 

 

 

"죽다니!" 그는 소리쳤다.

 

"나는 죽지 않았었어.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어.

 

그리고 나는, 발이 차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게 네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지?"

 

호기심에 찬 친구가 물었다. 
 

 

 

"음, 내가 천국에 있다면 배가 고플 리가 없고, 지옥에 있다면 발이 차가울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

 

 

 

 

봅 루카. 그대는 그대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배가 고프고, 발은 차갑다.

 

일어나서 좀 뛰어라!

 

 

 

 

교육도 별로 받지 못하고 사회적 예절도 모르는, 한 가난한 청년이 백만장자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그를 부모에게 소개하기 위해 고풍스런 대저택으로 그를 초대했다.

 

 

 

그는 비싼 가구들과 하인들, 그리고 모든 부유함의 표시들을 보고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저녁 식사시간 전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긴장하지 않은 듯이 보이려 애를 썼다.

 

커다란 식탁에 앉은 뒤, 포도주를 마셔 약간 취기가 돈 그는 큰 소리로 방귀를 뀌고 말았다. 
 

 

 

여자의 아버지는 고개를 들고 그 가난한 청년의 발 옆에 엎드려 있던 자신의 개를 쳐다보았다.

 

"로버!"그는 꾸짖듯 말했다.
 

 

 

그 가난한 청년은 비난이 개에게로 돌아간 것에 안심하고, 몇 분 뒤 다시 방귀를 뀌었다.
 

 

 

주인은 개를 쳐다보며 '로버!"하고 다시 소리쳤다.
 

 

 

몇 분 뒤 그가 세 번째로 방귀를 뀌었다.

 

 

 

주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는 고함을 질렀다.

 

"로버, 이자가 더 이상 너를 욕먹게 하기 전에 어서 꺼져 버려!"

 

 

 

 

봅 루카, 아직 시간이 있다. 그대가 이제껏 살고 있었던 감옥을 벗어나라!

 

그것은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가능하다. 도박꾼의 용기와 같은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억하라. 그대는 그대의 사슬을 잃을 수 있을 뿐이다.

 

그대는 그대의 지루함을 잃을 수 있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그대 안의 이 끊임없는 느낌을 잃을 수 있다.

 

그밖에 잃을 것이 또 무엇이 있는가?

 

낡은 틀에서 벗어나 그대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여라.

 

모세나 예수, 붓다, 마하비라, 크리쉬나가 아닌 그대 자신을 받아들여라.

 

그대의 책임은 붓다나 짜라투스트라나 까비르나 나나크의 것이 아니다. 그대의 책임은 오직 그대의 것이다.
 

 

 

책임을 져라.

 

그리고 내가 '책임(responsible)'이라고 말할 때, 그것을 잘못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나는 의무나 책임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진실에 대해 감응(respond)하라. '감응할 수 있게(response-able)'되어라.
 

 

 

그대는 무책임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대에게 기대하는 모든 책임감을 충족시키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런 삶에 잃을 것이 뭐가 있는가?

 

그대는 지루하다. 이것은 좋은 상황이다.

 

그대는 활기를 잃었다. 그대는 지루하다. 이것은 좋은 상황이다.

 

그대는 활기를 잃었다. 감옥에서 나오기 위해 이 밖에 또 뭐가 필요한가? 

 

뛰쳐나오라. 뒤돌아보지 말라! 
 

 

 

사람들은 말한다. 뛰어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라.

 

나는 말한다. 먼저 뛰어들어라. 그리고 나서 실컷 생각하라!

 

 

 

-오쇼 라즈니쉬, 거위는 밖에 있다(The Goose is Out)-


출처: 네이버카페 <탐구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