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향기

굉지정각과 그 사상

파라리아 2012. 1. 2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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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4  13:02:00



굉지정각(1091~1157)은 송대 조동종 제10대의 선사이다. 그 법계는 동산양개 - 운거도응 - 동안도비 - 동안관지 - 양산연관 - 대양경현 - 투자의청 - 부용도해 - 단하자순 - 굉지정각이다. 조동종 굉지파의 조사로서 산서성의 습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습주고불(州古佛)이라 불리기도 하고, 천동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천동화상(天童和尙)이라 불리기도 한다. 속성은 이(李)씨이다.

 

‘조동’ 가풍에 새로운 수행법 ‘묵조선’ 가미

 

# 굉지정각의 생애

11세 때 본종대사에게 출가하였다. 14세 때 지경대사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18세 때부터 만행을 하면서 고목법성에게 참하였다. 이후 23세 때 고목법성의 법형인 단하자순에게 참하여 〈법화경〉의 ‘부모로부터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눈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다 본다’는 대목에 이르러 깨침을 터득하였다. 굉지에게 이 말은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각자의 성품 그대로가 세상의 진리의 모습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성품으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것을 여실하게 꿰뚫어보는 것이다. 아득한 이전부터 본래모습 그대로가 구원실성으로 현서되어 있음을 터득한 것이다. 이것은 굉지의 묵조선 사상의 바탕을 형성하고 있다. 31세 때는 대홍산의 수좌가 되었다. 37세 때 상당설법을 하였다. 39세 때부터 천동산에서 주지가 되어 상당설법을 하였다. 이 무렵 〈묵조명〉을 저술하였다. 이로부터 30년 가까이 천동산에 주석하였다. 굉지정각은 67세에 입적하였다.

 만년의 굉지정각선사의 모습. 사진제공=김호귀

# 굉지정각과 묵조선

굉지정각은 조동종의 제10대 조사로서 당대 말기에 형성되어 300여 년 동안 전승된 조동의 가풍에다 묵조선(照禪)이라는 새로운 수행법을 가미하였다. 이것은 임제종 양기파의 대혜종고에 의하여 형성된 간화선과 거의 때를 같이 한 것으로 이후 선종의 역사에 큰 기여를 하였다.

묵조선은 새로운 선수행법으로 북송 말기 남송 초기에 걸쳐서 등장하였다. 묵조선은 침묵과 좌선으로 묵()하면서 진리를 관조하는 조(照)의 선수행법이라는 의미이다. 이를테면 몸으로는 좌선의 묵이고 침묵의 묵이면서 마음으로는 생생하게 깨어 있으면서 집중하여 진리를 관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묵조선은 기본적으로 지관타좌.본증자각.현성공안.신심탈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관타좌(只管打坐)는 오직 앉아 있다는 뜻으로 좌선을 강조하는 말이다. 올바른 앉음새의 좌선이고 깨어 있는 좌선이며 지속적인 좌선이고 깨침의 자세로서의 좌선이다. 이런 점에서 지관타좌는 묵조선의 구성요소이면서 동시에 그 특징이기도 하다. 이처럼 앉음새를 강조한 지관타좌는 반드시 본증자각이라는 본래성불의 사상에 바탕하고 있다.

굉지정각은 영파 천동사에 주석하며 조동종을 선양했다. 천동사에서 수학한 송대 일본 유학승인 도겐(道元)스님은 귀국해 에이헤이지(永平寺)를 창건하고 일본 조동종을 성립했다. 사진은 에이헤이지에서 수행하는 스님의 모습.  사진제공=도서출판 창해

본증자각은 당나라 시대 조사선의 가풍을 가장 잘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본래부터 깨침이 구비되어 있다는 본래성불의 의의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알고 모르는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의 실증일 뿐이다. 그 실증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성이다.

그렇지만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감추어져 있지 않고 드러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경우가 되어 있다. 그 알아차리는 것이 자각이다. 그래서 자각이란 이미 노출된 그대로 애초부터 그렇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단지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알아차려 수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각의 행위이다.

그런데 자각이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어떤 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완성되어 있는 진리에다 자신의 의지가 가미되는 행위, 곧 자각 자신의 자(自)와 진리의 각(覺)이 동시간과 동공간에 구현되는 행태이다. 그것을 진리가 구현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현성공안(現成公案)이라 한다. 이 현성공안은 공안 곧 진리가 나타나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자신이 진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애초부터 진리로 하나가 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와 같은 현성공안의 도리를 현성공안이게끔 만들어가는 행위가 좌선이라는 신체행위이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자각이라는 인식행위이며, 공안이 공안이라는 집착을 벗어나 탈락된 공안으로 되돌아오는 신심탈락(身心脫落)의 경험이다. 곧 몸과 마음이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신체와 자각과 경험이라는 세 가지 행위의 종합이 지금 당장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행위가 현성공안의 원리이다.

그러나 현성공안은 반드시 가부좌를 통한 본증자각이어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것은 곧 행주좌와(行住坐臥).견문각지(見聞覺知).어묵동정(語動靜).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의 모든 행위에서 일어난다.

굉지파 조사로 조동종 10대선사…마음 깨어 있으면서 진리 ‘관찰’

초심으로부터 자각 기르는 수행…깨친 존재로 ‘부처님’ 닮는 과정

이처럼 현성공안은 현성된 공안이면서 현성 자체가 곧 공안이 되어 있다. 그 즈음에 자신이 공안으로 현성된다. 그래서 자신이 현성되면 그 현성은 곧 공안이며 그 공안은 곧 나 자신이 되어 분별이 없는 하나로서 곧 전체가 된다. 이것을 공안체험이라 한다. 말하자면 애당초 깨침이 완성되어 있다고 보는 본래증득의 도리를 자각하는 것이다. 본증은 선천적으로 이미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깨침마저도 벌써 완성되어 있어 후천적으로 수행을 통해서 미혹으로부터 깨침을 얻는다는 것과는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본증의 의미로서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것은 그와 같은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능성이 이미 항상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증자각(本證自覺)은 몸소 느끼는 것이다. 그 방법이 다름 아닌 좌선이다. 그래서 좌선은 수행의 전부이다. 이때의 좌선은 더 이상 수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좌선 그 자체가 깨침을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에 여기에서의 좌선은 곧 깨침이다. 깨침으로서의 좌선이다.

그래서 좌선이 깨침의 형태라면 깨침은 좌선의 내용이다. 더 이상 좌선과 깨침이 다른 것이 아니다. 앉아 있는 것이 깨침 그 자체이기 때문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다름 아닌 그대로가 깨침으로서의 좌선이다. 그냥 몸으로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깨침의 내용이 몸의 좌선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좌선의 수행은 깨침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서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수행 자체가 깨침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는 말이다. 그래서 수행은 반드시 깨침을 목표로 하고 궁극에는 깨침이 이루어진다는 바탕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수행이 깨침의 이전단계로서만 이해되는 수행은 수행이 아니다. 수행은 깨침의 이전단계가 아니라 수행이 곧 깨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인식이 곧 자각이다. 그 인식의 대상은 물론 자기이다. 그러나 그 대상으로서의 자기는 인식의 대상일 뿐이다. 더 이상 본래자기가 아니다. 본래자기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법이연(法爾然)한 자기일 뿐이다.

그래서 본래자기를 터득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이 좌선으로서의 자각이다. 좌선을 통한 자각, 다시 말해 본래자기라는 심신(深信)이 수행이다. 따라서 좌선을 통한 자각의 수행은 본래불을 찾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구비하고 있는 본래자기를 닮아가는 행위이다. 곧 부처를 닮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부처를 닮아가는 행위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굉지정각은 바로 모든 사람에게 불심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범부가 바로 이 불심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음을 모르고 밖의 경계에 대한 취사분별에 지배되고 있지만,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깨침의 본원(本源)을 원만하게 드러내 가는 과정이 바로 초심으로부터 자각에 이르는 수행과정이라 말한다. 각자 그 본래불임을 자각하는 수행을 통해서 본래부터 깨친 존재로서 부처를 닮아가는 행위가 수행이라 하였다.

 

# 굉지정각과 그 저술

어록 4.6.9권본이 바탕…‘묵조명’은 8권에

굉지정각의 사상은 그의 어록 4권본, 6권본, 9권본이 바탕이 된다. 이 가운데 그의 저술 및 기타의 법문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9권본 어록의 경우 제1권은 상당설법, 제2권은 굉지송고, 제3권은 굉지염고, 제4권은 상당법문, 제5권은 소참법문, 제6권은 법어, 제7 이후는 각종 진찬.명.기.송 기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제2권의 굉지송고 100칙은 원나라 초기에 만송행수가 본칙의 전체적인 대의에 해당하는 수시(垂示), 본칙 및 게송에 붙인 짤막한 주석에 해당하는 착어(著語), 본칙의 일화에 얽힌 자세한 설명에 해당하는 평창(評唱) 등을 붙여 이지록(離知錄)이라는 이름으로 1224년에 간행하였다.

이것이 곧 종용암록(從容庵錄) 또는 종용록(從容錄)으로서 원명은 만송노인평창천동각화상종용암록(萬松老人評唱天童覺和尙從容庵錄)이다. 한편 제3권의 굉지염고 99칙에 착어.평창을 붙여 만송노인평창천동각화상염고(萬松老人評唱天童覺和尙拈古)라는 이름으로 간행한 것을 명대 1607년에 각허성일이 교정하고 생생도인 서림이 상재하여 청익록(請益錄)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또한 굉지정각이 묵조선의 근본입장을 천명한 〈묵조명〉은 제8권에 수록되어 있다.

 

 

 

김 호 귀

동국대 강사

 

[불교신문 2341호/ 7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