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피우기

맹세하지 말라

파라리아 2010. 1. 31. 01:41
 

또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 그리고 주님께 맹세한 것은 다 지켜라' 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하늘은 하느님의 옥좌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예루살렘은 그 크신 임금님의 도성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나 검게 할 수 없다.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태오 5장 33절~37절)

 

 

"맹세하지 말라"

 

이것은 참으로 심오한 가르침이다.

예수가 이 말을 했다는 것에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사람들은 쉽게 맹세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맹세하고, 스스로에게도 맹세한다.

'반드시', '절대로', '영원히', '죽어도' 등은

우리가 맹세할 때 자주 쓰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맹세할 때마다

스스로 덫에 걸리는 것이다.

맹세는 스스로를 구속하고 옳아맨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이다.

나의 몸도 시시각각 변하고, 나의 마음도 시시각각 변한다.

타인도 변하고, 상황도 변한다.

내가 맹세할 때의 나의 마음, 그리고 그 때의 상황은 더 이상 없다.

모든 것이 변한다. 오직 남은 것은 맹세의 그 말 뿐이다.

과거의 맹세를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죄책감과 부담감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왜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맹세라는 짐을 지우는가.

미래의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다.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평화가 보장될 수 있다.

그것이 미래의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단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우리는 미래에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은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며 변화하는데

어떻게 영원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라는 맹세를 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헤어지는 커플을 얼마나 많이 목격하는가.

왜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영원이라는 말로 덧씌우는가.

 

진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 (Now and here)" 이다.

지금 여기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진실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오직 신에게 맡겨야 할 영역이다.

그러나 인간의 많은 문제는

순간의 마음과 감정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 데서 생겨난다.

거기에서 번뇌와 괴로움이 싹튼다.

 

'반드시', '절대로', '영원히', '죽어도' 등의 맹세의 말로

신을 구속해서는 안된다.

지금의 마음이 미래의 나를 규정지을 어떠한 권리도 없다.

우리는 오직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그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좋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나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 분'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