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은 앉아서 수행을 한다고 해서
이것을 한문으로 ‘좌선’이라고 표현합니다.
좌선은 모든 불교수행의 기본이 됩니다.
이 기본을 탄탄하게 익혀 놓으시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걸어 다니면서 수행을 하는 행선,
또는 생활현장, 노동현장에서 하는 생활선이나 노동선을 할 때
매우 유익하게 될 겁니다.
마음이 좀 급한 성격이라면서 기본기를 익혀놓지 않고,
응용하는 쪽으로만 눈을 돌리게 되면, 처음은 잘 되는 것 같지만,
하면 할수록 수행의 유효성은 떨어지게 될 겁니다.
좌선을 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될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수행을 할 것인가 - 올바른 수행법을 먼저 선택해야 합니다.
앉아서 수행하는 좌선을 할 것인지,
절을 하면서 하는 수행을 할 것인지,
아니면 기도나 염불을 하는 수행을 할 것인지,
만약 좌선을 한다면,
중국 송대의 대혜종고(大慧宗杲)스님이 확립해 놓은
간화선(看話禪)의 방법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부처님의 방식대로 할 건지,
아니면 내 방식대로 할 건지,
먼저 수행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 반냐라마에서는 부처님이 하시던 방법에 기초하여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드리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스승이 있으면 좋습니다.
우리가 뛰어난 스승의 수행지도를 충분하게 받고,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수행의 노하우를 제대로 이전받게 되면,
적은 노력을 들여도 아주 효과적인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수행하는 장소는 전문가들에게는 어디든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초보자일 경우에는 주변여건이 좀더 양호하면 더욱 좋습니다.
한참 배고픈데 음식점 위층에서 수행하게 되면 좀 불편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여건이 좋으면 더욱 좋다는 것입니다.
또 기후는 너무 크게 신경안써도 좋습니다.
약간 더운 듯한, 이런 정도가 오히려 좋습니다.
그리고 수행을 할 적에 혼자서 해도 좋고,
여러 사람들하고 같이 해도 좋습니다.
참선이라는 것은 눈감고 하게 되므로 결국 혼자하게 됩니다.
수천명이 함께 앉아서 같이 수행을 해도,
눈을 감아버리면 어차피 자기혼자인 것입니다.
처음할 때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서 같이하기도 하지만,
조금씩 수행에 익숙해지다 보면 혼자하는 경우가 많게 될 것입니다.
함께 수행하는 분이 수행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수행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를 테면, 모처럼 수행 좀 해보려고 하면,
영화보러 가자거나, 술먹으러 가자, 또는 이야기 좀 하자는 둥 -
거기에 휩쓸리다 보면 결국은 수행 안한 것만 남게 됩니다.
부처님은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은 도반이라면,
- “혼자 수행하는 게 더 좋다” - 이렇게 생각하셨습니다.
결국 수행에 마음이 맞고, 수행에 도움이 되면, 함께 수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수행을 할 때는 가능한 한 옷은 느슨하게 입는 게 좋습니다.
몸에 꽉 조이는 옷은 남보이기는 좋겠지만 수행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넥타이나 양말은 벗어버리고, 속옷도 좀 느슨하게 하는 게 좋습니다.
가능하다면 수행복을 입고 편안한 자세로 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좌선수행은 맨바닥보다는
약간얇은 방석위에 앉아서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어느 선방에 가서 수행할 경우에,
- “수행을 잘하는 사람옆에 앉아, 그 사람 덕 좀 봐가면서 수행하자” -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수행을 잘하는지를 모릅니다.
이때 여러분들이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방석이 좀 두꺼운 사람은 초보자일 확률이 큽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방석이 얇으면 얇을수록 수행이 좀더 깊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 사람 옆에 가서 앉아서, 그 사람의 수행 향기를 맡으면서
수행을 하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현미경을 들고 연구소에 가서
물질을 분석하고 물질에 내재되어있는 기본법칙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방석을 들고 선실로 가서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지요.
마음이 갖고 있는 기본법칙을 이해하고, 그 법칙을 역이용해서,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정신적 노폐물과 정신적 오염원을 제거해서,
보다 행복하게 살자고 이 반냐라마에 온 것입니다.
이렇게 방석 한 장을 준비해서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좌선은 앉아 있는 것이 기본입니다.
좌선을 시작할 때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행선을 먼저하고 그다음에 좌선을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때에는 상관없습니다.
이제 방석을 바닥에 놓습니다.
불교도의 경우에는, 부처님을 향해서 앉는 것이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간혹 우리나라 선방에 가보면,
부처님을 등지거나, 벽을 보고 앉아서 좌선을 하는데,
부처님의 정통적인 수행방법에는 항상 부처님을 향해서 앉게 됩니다.
그런 다음, 불교도의 경우에는,
부처님을 향해서 천천히 알아차림을 하고, 절을 세 번하고,
그런 다음, 이번 좌선시간에 부처님의 거룩한 법을 만날 수 있기를 -
내 마음에 존재하는 모든 번뇌들을 다 제거할 수 있기를,
이렇게 거룩하고 강력하게 서원을 세우고 조용히 앉아서 좌선을 시작합니다.
앉을 때에는 발을 어떻게 하는가?
발을 서로 포개지 않고, 바닥에 앞과 뒤로 편안하게 놓으십시오.
이런 모습을 일반적으로 평좌라고 합니다.
부처님 정통수행법에서는 발을 이렇게 편안하게 놓습니다.
그런데,
시중에 나와있는 참선소개 책들에서 발을 어떻게 놓을 건가 하는 것인데 ...
- 아마 결가부좌(結跏趺坐)의 방식으로 앉아야 된다고 해놨을 것입니다 -
발을 꽈서 앉는 것을 일반적으로 결가부좌라고 합니다.
이것은 불교 참선하는 방법이 아니라 요가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대개 우리나라 스님들이 이렇게 앉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많은 책에서,
- 이렇게 앉는 게 좋다, 이것이 정통적인 방법이다 - 이렇게 해놔서이겠지만
어떤 불교문헌에서도 어느 것이 정통적인 방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경전에 보면,
“발을 엇갈리게 두고 앉는다.” - 이렇게 되어 있는데,
중국에서 한문으로 - 결가부좌 - 라고 번역하고서, 이렇게 앉는 것이다.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불교 경전이나 문헌에서는 이런 방법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또, 발을 반쯤 포개어 결과부좌의 변형으로써 - 반가부좌(半跏趺坐) - 이런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이것도 자세가 좀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의 삼매가 깊어지고, 수행의 진도가 나가게 되면,
이런 자세가 얼마나 불편한 자세인지 알게 될 테고,
알아차림과 삼매를 키우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는 폼은 좀 나는 것 같지만 -
수행에는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수행을 할 때는,
부처님의 방식대로 평좌를 취하는 게 좋습니다.
한번은 오른쪽다리가 앞으로 나왔으면
다음번에는 왼쪽다리가 앞으로 나오도록 발을 바꿔서 앉으면 됩니다.
그리고 좌선하는 동안에는 가능한 한 발을 바꾸지 않는 게 효과적입니다.
다음으로는 손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데
바깥에 있는 발이 향한 쪽으로 손도 그렇게 함께 둡니다
손을 앞쪽으로 많이 내놓지 말고,
배꼽 쪽으로 바짝 당겨서 허벅지있는 쪽으로 편안하게 두시는 게 좋습니다.
간혹 손가락을 동그랗게 해서 엄지손가락이 마주치도록 하는데
- 이것은 나중에 수행이 진척되어 삼매가 커지게 되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도리어 수행을 방해하는 결과로 됩니다.
그렇게하게되면, 어깨 또는 척추 쪽에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면, 알아차림하는 마음의 기능이 중지를 해버립니다.
삼매도 깨지고 알아차림도 효과적이지 못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수행을 할 때,
수행의 진도가 정상적으로 나가고,
삼매가 커져서 몸에 힘이 들어갈 경우에도
엄지손가락이 맞부딪쳐서 힘을 받도록 하지 말도록
엇갈리게 두게 되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편안하게 두시면 수행하는데 효과적입니다.
스님이 무슨 말씀을 해도,
나는 손을 이렇게 갖다 놔야 편합니다라고 하면
그리 갖다 놓고 하세요.
또는 나는 이렇게 손을 놔야 됩니다라고 하면
그리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한번 취한 자세는 그 시간동안 가능한 한 변경시키지 말 것,
이것이 기본원칙입니다.
손을 이렇게 두거나, 저렇게 두는 것보다도 편안하게 두시고,
허리를 똑바로 펴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목도 똑바로 펴세요.
이 상태에서 턱을 조금만 당겨주세요, 병아리 눈물만큼만 당겨야 됩니다.
어떤 분들은 턱을 이렇게 많이 숙이는 경우가 있는데,
턱을 많이 숙이면, 목을 숙이는 결과로 되어
목뼈에 많은 무리가 가서 도리어 수행에 방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척추를 똑바로 세우시고,
머리도 똑바로 세우시고,
이 상태에서 턱만 조금 당겨주세요,
그리고 눈을 딱 감으시면 됩니다.
간혹 참선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에서 눈은 반쯤 떠야된다라고 했는데,
불교경전에서는 눈은 반드시 감아라 -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부처님의 정통수행법에서는
눈은 반드시 감도록 되어있습니다.
눈을 이렇게 반쯤 감으라고 하는 것은,
간화선 수행에서 화두를 잡고 수행을 할 때에 이 방법을 많이 권했습니다.
왜냐하면, 눈을 감게 되면, 졸음에 쉽게 떨어지고, 따라서 망상에 휘말리기 때문에,
눈을 반쯤 떠서 졸음을 쫓고 망상을 쫓아야 된다고 하여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망상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그 망상을 알아차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몸을 갖고 있는 한 망상이 없을 수는 없고,
졸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졸음을 없애려고 하거나, 망상을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찾아오는 망상과 졸음을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놓고
알아차림을 하는 것입니다.
망상이나 졸음을 알아차리면 수행의 대상이 되지만,
그것에 휘둘려버리면 망상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글 수는 없습니다.
결국 부처님은 눈을 감고,
졸음이 오면 졸음을 알아차리고,
망상이 오면 망상을 알아차림해야 된다 - 이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수행을 통해서,
삼매를 키우고,
알아차림을 키우고 - 수행의 진도를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자, 대강 이렇게 차림새를 갖추어,
어디 공원의 나무밑이나, 등산로 옆 바위위에, 한 폼잡고 척 앉아 있으면,
남이 얼른 보면 영락없이 도인같습니다.
말을 해버리면 밑천이 드러나니까,
말은 하지 말고, 입을꾹 다물고, 그냥 거룩하게 앉아 있으면,
어디서 지리산 도인이 내려왔나? - 이런 모습이 될 겁니다.
이렇게 수행의 기본자세를 취하고, 이제 수행을 시작합니다.
눈을 딱 감은 이 상태에서,
눈앞에 비추어지는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 - 이제 수행이 시작되는 겁니다.
뭐 수행이 별겁니까? 이렇게 하는 겁니다.
수행을 하는데 ----
가령, 소리가 들리면 - ‘들림, 들림, 들림’
또는,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 ‘생각, 생각, 생각’
그리고 어떤 모습이 보이면 - ‘보임, 보임, 보임’,
- 내 마음에 반영되는 대로 이름을 붙이고 알아차림을 해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제대로 될 것 같은데 실제는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처님부터 시작해서,
역대 훌륭한 어른스님들은,
내 마음의 반영되는 현상을 알아차림하고 따라다니기보다는,
기준점을 하나 이렇게 딱 정해놓죠,
그리고 마음을 항상 기준점에 갖다 놓습니다.
기준점을 계속 알아차림하는데,
이때 내가 기준점을 알아차림하는 것을 방해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방해하는 현상을 한번 알아차림하고 다시 기준점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수행하는 노하우입니다.
부처님같은 경우는 기준점을 어디다 정했느냐 하면
코끝에다 정했습니다. 코끝에다 마음을 딱 갖다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공기가 들어가면 이름을 붙였습니다. - ‘하나’ -
공기가 나오면 - ‘둘’ - 이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코끝의 지나가는 공기에 기준점을 둔다고 ‘호흡관’이라 했습니다.
또는, 공기의 흐름에 숫자를 붙이며 알아차림한다고 ‘수식관’ 이라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소리에다가 기준점을 정해놓고,
그 소리를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아서 수행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령, 염불선에서는 ‘나무아미타불’ 또는 ‘관세음보살’ -
이것을 기준점으로 정해놓고 마음을 거기에 보냈습니다.
또, 大慧宗杲선사같은 분들은 화두(話頭)를 기준점으로 정해놓고,
마음을 여기에 보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기준점을 정한다는 것,
그리고 알아차림하는 마음을 기준점에다 보낸다는 것,
그러다가 방해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방해하는 현상을 알아차림하고,
다시 기준점으로 돌아오는 것,
- 이것이 불교정통수행법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또, 부처님같은 경우에는
몸의 32군데 지점을 정해놓고 마음을 보냈습니다.
예를 들면, 정수리, 귀, 어깨, 팔목, 손목, 이런 식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방해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
가령 어디서 소리가 들리면 ‘들림, 들림, 들림’
- 그리고는 다음 지점으로, 다음 지점으로 이렇게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니까 좀 복잡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900년전(서기 1200년대초),
중국의 대혜종고선사는,
그렇게 32군데로 쫓아갈 거 뭐있노,
“화두라고 하는 하나의 지점에 마음을 두자” - 이렇게 보았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간화선(看話禪),
또는 화두선(話頭禪)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80 - 90년전,
미얀마의 마하시선사같은 분은 몸의 32군데를 쫓아가려고 하니까,
일반인들이나 초보자들에게는 너무 힘이 든다 하여,
그 32군데를 두 군데로 단순화시켰습니다.
이 방법을 지금 여러분에게 가르쳐드리게 됩니다.
앞으로, 우리가 앉아서 좌선을 할 때는
배의 움직임을 기준점으로 삼아서 수행하게 될 겁니다.
위 서술데로 편안하게 앉아서 내가 앉아 있는 모습을 한번 관찰해 보세요,
- ‘앉음’ - 이때 반드시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엉덩이가 땅에 닿은 데다 마음을 보내면서 - ‘닿음’ - 이렇게 하면 됩니다.
눈을 감고 앉아있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 ‘앉음’,
다시, 엉덩이가 땅에 닿은 데다 마음을 보내면서 - ‘닿음’ -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서 ‘앉음 - 닿음 - 앉음 - 닿음’
한두번 하다가 알아차림하는 마음을 배에다가 툭 던져 보십시오,
배꼽있는 부근에다 마음을 한번 툭 던져 보십시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게 뭐냐면 -
코를 통해 배로 들어가는 공기의 흐름과
배의 움직임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폐로 들어가는 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횡경막이 움직이고,
그래서 배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연동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수행을 해보시면
폐로 들어가는 공기의 움직임과 배의 움직임은
서로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단어를 분리해서 사용합니다.
호흡은 폐로 들어가서 움직이는 공기에 대하여 사용하는 용어이고,
배의 움직임은 순수하게 움직임만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폐에 들어가 움직이는 공기에 흐름을 주목하지 말고,
이것을 감지하더라도 그냥 내버려두고,
배의 움직임에다 초점을 두시면 됩니다.
이때 배의 움직임을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하듯이
인위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교수행의 기본을 벗어나는 겁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불교수행을 권장하는 많은 책을 보면,
배의 움직임은, 인위적으로 천천히 들이쉬고 - 내쉬고 - 이렇게 조절해야 된다고 합니다.
배 근육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게 되면,
알아차림을 하는 기능은 그 순간부터 중지해버립니다.
지금 우리는 근육운동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하는 기능을 단련하는 것이 불교수행의 핵입니다.
근육을 움직이는 것은 일반적으로 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알아차림하는 이러한 기능을 움직이는 것은 수행이라고 규정을 합니다.
배를 볼 때, 배를 인위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교수행에서는 금물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배를 인위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배를 생체리듬에 맡겨 버리십시오.
생체리듬에 따라서, 배가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림하고 따라가시면 됩니다.
배가 생체리듬을 따라서 불룩하게 불러오면,
- ‘일어남’ - 하고 명칭을 붙이고 따라가십시오,
배가 쑥 꺼지면 - ‘사라짐’ - 하고 명칭을 붙이면서 따라가십시오,
이때 어떠한 경우에도 배를 인위적으로 움직이지 마시고,
생체리듬에 따라서 움직이도록, 그냥 두고 보셔야합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서 배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이 불교수행,
특히 앉아서 수행하는 경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입니다.
그러다가 방해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그 방해하는 현상에 마음을 보내서 알아차림하면 됩니다.
가령 전화소리가 들리면 - ‘들림 - 들림 - 들림’
망상이 일어나면 - ‘생각 - 생각 - 생각’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르면 - ‘보임 - 보임 - 보임’
앉아 있는 무릎이 아프면 아픈데다 마음을 보내서 - ‘아픔 - 아픔 -아픔’ -
그리고는 즉각 기준점인 배의 움직임으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이것이 수행을 하는 가장 기본자세입니다.
이렇게 수행을 할 때,
그 수행의 길이를 어느 정도로 할 건가 하는 겁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경우에는 5분도 좋고, 10분도 좋고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시간 여유를 갖고 수행을 할 때는
60분을 기본으로 정해놓는 게 효과적입니다.
수행의 진도가 더 나가면 2시간 정도로 늘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늘리는 것은
수행을 지도해주는 분과 먼저 상의를 하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자가 자기 임의대로 시간을 늘려가다 보면,
자칫 잘못할 경우 옆길로 샐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처음 수행을 할 때, 60분정도 앉아서 하다 보면,
1시간 내내 앉아 있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허리도 아프고 발도 아프고 -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면 수행자들이 자꾸 발을 바꾸는 경향이 있는데 -
가능하면 60분 동안 발을 안바꾸는 게 좋습니다.
바꾸지 않고 계속 버티다 보면
통증이 너무 강해져서 눈물이 날정도로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꾸지 않고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는 것이 다음 시간을 위해서 좋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없어 발을 바꿔야 되겠다 싶으면 -
그 바꾸는 모든 과정을 알아차림하면서
한번 정도 또는 두 번 정도 바꿔주시면 됩니다.
당초 정해진 시간만큼 수행을 하고,
이제 마쳐야 되겠다하는 생각이 들거든
- 마치려고 함 - 하고 의도를 관찰하고, 호흡을 한 번 -후 - 토해냅니다.
그리고 인연있는 분들한테 자비관을 보내고 마치면 됩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다가 - 20분이나 30분정도 좌선을 하는데 -
갑자기 전화가 왔거나, 누가 찾아와서, 누가 부르거나 해서,
수행을 중단 하고 일어나야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도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행동으로 바로 옮겨가는 경우가 있는데,
행동으로 곧바로 옮겨가게 되면 몸에 무리가 많이 올 수 있습니다.
대개 20분, 30분정도 좌선을 하게 되면 생체리듬이 지극히 안정됩니다.
이때 갑자기 움직이게 되면 몸에 많은 무리가 야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대답하시고,
그리고나서 조금 천천히 움직여 주는 게 좋습니다.
몸을 움직이거나, 몸을 앞뒤로 좀 흔들다가 일어나면 효과적입니다.
특히 연세드신 분들은 이점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불교수행은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겁니다.
그러므로 통증이 있거나, 망상이 있거나,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몸으로 대응을 해버리면 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몸은 이 기본자세에서 움직이지 말고,
마음만 대상을 쫓아서 움직이고,
그 대상을 알아차림한 즉시 기준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수행의 기본입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에 정진하게 되면 머지않아 부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행복의 바다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하십시오.
- ㅂ힉쿠 붇ㄷ하빠-라(Buddhapala) -
출처:
http://cafe.naver.com/banyaram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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