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상들이 있고, 어떤 사상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것도 있다. 우리가 어떤 사상을 믿게 된다면, 또는 어떤 잠정적인 삶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태도나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고 살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윤회가 있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타인을 위해서 사는 것이 옳은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모두 행동에 영향을 주는 동기들이다.
내가 발견한 것은, 이러한 사상적인 동기 자체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 동기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로서의 행위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태도와 행위일 뿐이지, 어떤 내용의 믿음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역이라는 사상 체계를 굳게 믿고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주역적인 세계관은 과학적으로 비합리적일 수 있다. 이 세계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점괘를 뽑아서 나온 것이 나의 운명을 말해줄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합리적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주역적인 가치관은 인간이 겸손할 것을 암시적으로 가르치며, 시세는 항상 변할 수 있음을 알려줌으로써 자신의 일시적 운에 안주하지 않도록 만든다. 이러한 사상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인간으로 하여금 삶과 세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게 하고 어떤 행위로 나타나게 한다. 이 때 이 세계가 관계하는 것은 오직 그 태도와 행위일 뿐 어떤 사상과 동기로 그런 행위를 하는가는 전혀 관심 밖이다.
가령 이 세계는 (혹은 신은) 어떤 종교를 믿건 어떤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건 타인을 불쌍히 여겨서 돕는 마음과 태도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건 이슬람교인이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종교를 믿고 있건 간에, 타인을 사랑하여 돕는 행위 자체가 그를 행복한 인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자신의 사상을 정당화하는 논리 자체는 어쨌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논리가 어쨌건 간에 그 생각으로부터 결과된 행위가 존재계의 논리에 맞지 않으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상을 볼 때도, 그 사상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가만 볼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그 사상이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태도와 행위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찰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 2009년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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