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피우기

생명체의 의미

파라리아 2011. 3. 27. 01:02

젊음이라는 특권은 계속 새로운 세대가 차지한다. 한때 뭇 남성들의 시선을 잡아끌던 아름다운 여배우도 이내 새로운 어린 여배우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다. 그리고 모든 남성들은 20대 초중반의 앳되고 아름다운 여자만을 바라보고 있다. 젊음이란, 그리고 인기란 그렇게 일시적이고 덧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나에게 잡아놓고, 그들의 마음속에 사랑의 싹을 돋게 한 그것은 결국 그의 외모였다. 그것은 자연이 스스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창조해 놓은 것. 그것은 제비뽑기 같은 것이다. 오로지 거기에 매달려 자신의 행복을 담보잡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 


모두가 젊은 것, 어린 것을 추구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젊어 보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20대만을 바라보고 동경한다면 다른 나이의 가치는 무엇인가. 한 친구가 말하길 인생의 나머지는 그냥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시기라고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에게 유일하게 의미 있는 시절은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일 뿐이고, 인생의 가장 큰 목적도 생식生殖일 것이다. 결국 인생의 의미는 좋은 유전자를 가진 배우자를 만나 자손을 퍼뜨리는 일일 뿐이다. 그것은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생명의 목적과도 일치하기는 한다. 생식을 끝낸 생명체는 별로 큰 가치가 없는 것이다. 아니면 낳은 자손을 잘 기르고 교육시키는 일이 유일한 가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고 하는 개체의 의미는 무엇일까. 원래부터 나라는 독립적인 개체의 의미 따위는 없는 것이고 오직 종족 전체의 관점에서만 나의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점이 항상 의심스럽다. 나는 항상 나의 존재 의미를 물어왔다. 그리고 종족보존이라는 목적은 결코 궁극적인 대답이 되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런 대답은 항상 불만족스럽다.

생식의 관점에서는 수많은 낙오자들이 존재한다. 생식의 과정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힘 센 수컷이 많은 암컷을 거느린다. 인간들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힘이 있는 자가 더 유리한 이점을 안고 생식을 한다. 그것은 경제적인 힘일 수도 있고, 정치권력일수도 있고, 혹은 매력적인 성적 특징일수도 있다. 그러나 낙오자들은 많다. 수컷도 낙오자들이 있고, 암컷도 낙오자들이 있다. 그들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만일 전혀 생식을 하지 못하고 죽는 생명체가 있다면 그는 단지 자연이 생식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숫자를 늘려놓은 것 중 하나일 뿐인가.

동물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살다 죽던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나라는 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고 그 의미를 강하게 묻도록 되어 있다. 오직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가능하다. 인간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맹목적으로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이다. 인간은 스스로 평생 독신을 선택하기도 하고, 자손을 갖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나는 자손을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동물을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인간은 많은 측면에서 자연에 위배되는 행위를 해왔다. 지금도 콘돔과 피임약을 이용한 성교가 수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물주가 있다면 아주 괘씸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자손을 낳으라고 성교 시의 쾌감을 주었는데, 자손은 낳지 않고 성교 시의 쾌감만 쏙 즐기겠다는 것이니 괘씸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동물과 신 사이에 있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운명과 자유라는 두 언덕에 걸쳐 있는 다리와 같다. 인간은 전적으로 운명적이지도 않고, 전적으로 자유롭지도 않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딜레마다.


- 2004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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