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피우기

진리 탐구로서의 철학 공부

파라리아 2011. 8. 3. 13:34


진리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들은 철학을 공부하고자 한다. 

철학은 존재하는 학문 중 가장 진리탐구와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려면 대학의 철학과에 가야 한다. 

철학과 대학원에 가서 고전들을 공부하고 여러 연구 문헌들을 학습하며 자신의 논문을 쓴다. 

석사논문이 학문의 시작이라면 박사논문은 학문의 작은 완성이다. 


그런데 내가 대학원이란 곳에서 발견한 것은, 모든 공부의 목표가 박사학위논문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집단에서의 목표는 결코 진리탐구가 아니라 훌륭한 논문을 써서 훌륭한 학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아마도 처음에 철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들은 진리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학원의 분위기는 자유로운 토론을 하는 분위기도 아니며, 

진리 자체에 대한 열망보다는 과거의 사람들이 했던 말들을 주워 담아 

그럴듯하게 한편의 글을 쓰는 데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도대체 그렇게 그럴듯한 한편의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되었다는 말인가. 


노자의 도(道)에 대한 탁월한 해석을 담은 박사 논문을 쓴 사람이, 그 자신의 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자신이 읽었던 책 속에 있는 구절들 뿐일 것이다. 

이것이 정녕 진리탐구란 말인가. 


노자 자신은 이미 이런 식의 공부 방법이 갖고 있는 병폐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자는 이런 공부를 '위학(爲學)'이라고 부르며 진정한 도를 추구하는 '위도(爲道)'와 구별하였다. 


철학은 일종의 사고(思考) 놀이일 뿐이며,

답을 얻을 수 없는 끝없는 질문의 연속일 뿐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내가 무엇을 꼭 써야 하는 것이 싫다. 

서론 본론 결론을 갖추어 레포트나 논문을 꼭 써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생각이란 것은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서론 본론 결론을 갖추어 일관되게 쓰려면 어떻게든 논리를 짜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생각이란 대개 단편적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일관된 논리를 만들어내려면 항상 비약(jump)이 있게 된다. 

그 논리적 비약은 곧 내 글의 허점으로 지적될 것이다. 


논문이란 언제나 나에게 완전한 하나의 논리를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완전한 논리라는 것의 모순성을 알기 때문에, 평소 나의 글은 대부분 단편적이고 짧다. 

노자나 헤라클레이토스 등이 역시 그런 짤막한 단편들을 쓴 것은 어느 정도 나와 비슷한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나는 실제적(practical)이지 않은 것을 싫어한다. 

이름뿐인 것, 전통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 핵심과 동떨어진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나는 거짓된 삶을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적이고 올바른 길을 가고 싶다.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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