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기억하라. 행복이 그대에게 찾아올 때는 언제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고통은 원인이 있지만 행복은 원인이 없다. 고통은 어떤 것에 의해 생겨난다. 고통은 원인과 결과의 일부이다. 기계적인 세계의 일부이다. 행복은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생겨나지 않는다. 그대가 열려 있을 때마다 행복은 그냥 일어난다. 마치 행복이 그대의 본성인 것처럼. 그대가 그 안에 자리잡을 때마다 행복은 일어난다. 불행은 그대의 본성이 아니다. 불행은 무언가에 의해 일으켜져야 하며, 만들어져야 한다.
기억하라. 다른 사람들은 그대에게 고통을 일으킬 수 있지만, 그들은 그대에게 행복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일단 그대가 이것을 이해한다면, 그들은 그대에게 고통조차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일으킬 수 있지만, 행복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일단 그대가 이것을 이해한다면, 그대는 고통을 일으키는 것 또한 멈출 것이다. 고통은 원인과 결과라는 사슬의 일부이다. 행복은 삶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고통을 일으킬 원인이 없는 곳에서는 갑자기 행복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행복은 항상 거기에 있었지만, 그대는 너무나 고통에 촛점을 맞춰 왔다.
그것이 붓다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이다. '행복(happiness)에 대해서는, 지복(bliss)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 사치다난다(SAT-CHIT-ANANDA : 실재, 의식, 지복)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궁극의 지복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그럴 필요가 없다. 단지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을 알라.' 만일 고통이 없다면, 바로 그 고통의 부재가 지복이다. 왜냐하면 지복은 그대의 타고난 본성이기 때문이다. 지복은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것이 아니다.
지켜보라: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그대는 항상 그 고통이 외부로부터 오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행복을 느낄 때마다, 그대는 단지 행복이 그대의 내부에서 일어난다고 느낄 것이다. 행복은 그대 의식의 꽃이다. 고통은 그대에게 들어온 가시이다. 그 가시는 외부로부터 온 이질적인 것이지, 그대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대가 고통을 겪을 때마다, 그대는 그 고통이 어딘가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알려진 사람이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건, 누군가가 그 고통에 책임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대가 행복할 때, 그대는 누군가가 그 행복에 책임이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대가 고통을 겪을 때, 그대는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그대가 행복할 때, 그대는 결코 묻지도 않는다. 만일 누군가 행복해 하면서 '내가 왜 행복한가?'라고 묻는다면, 우스꽝스럽고, 바보같고, 미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대는 행복하다. 그게 전부다. 거기에는 '왜'가 없다. 그러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나는 왜 고통을 겪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무도 그가 부적절한 것을 묻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통에 대해서 '왜'라는 물음은 적절하다. 지복에 대해서 '왜'라는 물음은 부적절하다.
– OSHO, <Come Follow To You>, Vol 4, CH.1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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