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는 영어의 선생(teacher)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5가지 범주가 있다.
첫째는 아리한타(arihanta)라고 부른다. 아리한타는 선생이자 스승이다. 스승이란 자신이 말하는 것을 깨달은 자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예수는 아리한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은 무엇이든 자신이 깨달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나는 나 자신의 권위로 말한다."고 했다.
둘째는 싯다(siddha)라고 부른다. 싯다는 오직 스승일 뿐이다. 그는 깨달았지만 깨달은 내용을 전달할 역량이 부족하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말할 수 없다. 일면 그는 멍청해 보인다. 세상에는 저 너머의 깨달음을 언어로 표현할 역량이 부족해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못한 성자들이 많았다. 이들도 붓다이자 선생이라고 불린다.
세번째는 아차리야(acharya)라고 부른다. 아차리야는 선생일 뿐 스승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스스로의 권위로 말하지는 않는다. 교황은 아차리야다. 예수가 아리한타라면 교황은 아차리야다. 교황은 스스로의 권위가 아닌 성경의 권위에 기대어 말하고 있다.
네번째는 우바드야(ubadhyay)라고 부른다. 우바드야는 자신이 말하는 것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아마도 이들이 가르치는 단편은 진실일 것이다. P.D. 우스펜스키는 구르지예프에 대한 책, 『구르지예프의 길In Search of the Miraculous』을 썼다. 이 책의 부제는 "알려지지 않은 가르침의 단편들Fragments of an unknown teaching"이다. 그는 매우 진실되게 부제를 달았다. 우스펜스키는 단지 가르침의 일부만 이해할 수 있었기에 '단편들'이라고 했다. 다른 부분들은 그의 이해를 넘어서 있다. 우스펜스키와 같은 사람도 선생이라 불린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사두(sadhu)라고 부른다. 사두는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지만 깨닫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대보다 겨우 한 발자국 정도 앞섰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만큼은 가르칠 수 있다. 그는 깨달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따라서 무엇이 진리인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없다.
- 오쇼, 1982년 10월 14일, (『Silent Period』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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