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로운 세계가 국가나 대도시, 가족이 사라진 공동체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수백만 개의 작은 공동체들이 나무가 무성한 숲과 산과 섬들 사이에 흩어져 자리잡을 것이다. 우리가 이미 시도해 보았던 5천 명의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서부터 크게는 5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도 가능하다. 5만 명 이상은 꾸려나가기에 불가능한 크기이다. 그렇게 되면 규칙이나 법, 경찰, 법정이 다시 필요해진다.
인구 5천 명 정도의 작은 공동체가 가장 완벽할 것 같다. 우리가 이미 한 번 시도해 보았기 때문이다.(미국 오리건 주에 건설했던 라즈니쉬푸람을 말한다-옮긴이)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알고 지내며 모두가 친구이다. 결혼은 존재하지 않고 아이들은 공동체에 속한다. 공동체 안에는 병원과 학교와 대학이 있다. 아이들은 공동으로 양육하며 부모들은 이따금 아이들을 방문할 수 있다. 부모는 함께 살아도 좋고 따로 살아도 상관없다. 아이들은 양쪽 부모를 다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이 부모를 방문해도 되고 부모가 아이들을 방문해도 된다.
모든 공동체들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돈으로 교환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돈은 없어져야 한다. 돈은 인간성에 아주 큰 해를 끼쳐 왔다. 이제 돈에 작별을 고할 시기가 왔다! 공동체들 사이에서는 물물교환이 이루어진다. 유제품이 남아도는 곳에서는 다른 공동체에 유제품을 줄 수 있고, 모자라는 의류 같은 것을 공급받을 수 있다. 그저 일대일 교환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어느 공동체가 특별히 부유해지는 경우는 없다.
돈은 이상한 물건이다. 쌓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돈의 기이한 비밀이다. 유제품이나 야채 같은 것들은 쌓아둘 수 없다. 야채가 너무 많으면 야채가 모자라는 공동체와 나눠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돈은 남으면 쌓아둘 수 있다. 하나의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보다 부유해지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자본주의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계급이 나뉘고 지배욕에 불이 붙는다. 하나의 공동체가 부유해지면 다른 공동체들을 노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은 인간의 적이다.
공동체들 사이의 물물교환은 이렇게 일어난다. 어떤 공동체에서 남아도는 물건들의 목록을 방송하면, 그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이 연락을 취해 온다. 그들 역시 교환할 수 있는 물건들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물물교환은 우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흥정이나 일방적인 착취는 없다. 그러나 공동체는 너무 커져서는 안 된다. 너무 커지면 위험하다. 공동체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알고 지낼 수 있는 정도의 크기여야 한다. 그것이 한계이다. 그 한계를 벗어나면 공동체는 둘로 나뉘어져야 한다. 마치 두 형제가 분가하듯이 공동체가 너무 커지면 둘로 나뉘어져 자매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소유욕이나 애국심, 광신적인 태도를 배제하면서 사상과 기술을 나누는 방식으로 좀더 깊이 상호의존할 수도 있다. 국가나 민족 같이 광신적인 태도를 만들어내는 원인은 애초에 있을 수도 없다.
사람들끼리 작은 집단을 만들면 인생을 좀더 쉽게 즐길 수 있다. 친구와 지인이 생기는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거대도시에서는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들도 서로를 모르고 지낸다. 하나의 건물에 천 명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이방인이다. 군중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홀로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충분한 공간을 갖지만, 더 가깝고 사랑으로 가득 찬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곳이다. 아이들은 공동으로 양육되고, 공동체는 기본적인 생계나 의료서비스도 제공한다. 공동체는 과거의 가족제도가 야기한 질병이 말끔히 사라진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될 것이다. 공동체는 매우 유동적이고 느슨한 가족제도라고 보면 된다.
결혼이나 이혼으로 인한 문제는 없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내고자 하면 함께 살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진다. 아무 문제도 없다. 함께 지내기로 결정한 것은 그들 자신이었으므로, 이제 다시 다른 사람을 선택해도 좋다. 한 번의 인생을 다양하게 살면 왜 안 되는가? 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는가? 함께 하는 인생이 즐겁지도 않으면서 왜 평생을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매달려 살아가는가?
(중략)
공동체에서는 그런 법석을 떨 필요가 없다. 아무 때라도 이별을 고할 수 있지만, 여전히 친구로 지낼 수 있다. 누가 아는가? 한두 해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같은 여자와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 한두 해의 시간이 모든 문제를 잊게 해서, 다시 함께 지내게 되기를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더 풍요로운 삶이 될 것이다. 더 많은 남자와 더 많은 여자를 알게 되고 사람마다 독특한 품성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공동체 사이에서는 사람들의 교류도 일어난다. 한 공동체에서 다른 공동체로 가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받아들여준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원하는 사람들을 보내고 받는다. 다른 공동체에 가서는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마음에 들어하는 여자는 연인이 될 수 있고, 친구로 사귈 수도 있다. 하나의 공동체에 싫증이 난 사람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된다.
온 세상이 하나의 인류가 되어야 한다. 인종차별이나 민족주의 따위의 광신적 태도와 상관없이 오직 현실적인 기반을 가진 공동체들로 나뉘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쟁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즐길 가치가 있고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인생을 일궈나갈 수 있다. 유쾌하고 명상적이고 창조적이며, 모든 여자와 남자에게 성장할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하고, 우리 내면에 숨겨진 꽃을 피우게 하는 인생을 만들 수 있다.
- 오쇼, <사랑이란 무엇인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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