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피우기

격언 투로 씌어진 고전의 가치

파라리아 2009. 6. 7. 04:29

 

격언(格言) 투로 씌어진 고전(古典)들이 비록 구구절절이 그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지만 그 가치를 결코 폄하할 수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격언 투의 고전의 의미는 우리의 삶의 체험이 더욱 성숙해 질수록 더욱 잘 이해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이라는 책은 노자라는 사람의 성숙함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보여준다. 만일 내가 그 책을 읽고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라는 인간이 아직 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 나의 지적 수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도덕경의 의미는 초등학생이라도 한문만 어느 정도 읽을 줄 알면 해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도덕경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만일 노자가 자신의 글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이유를 달았다면, 그것을 읽은 사람은 그 이유와 근거를 머리 속으로 이해하고서는 “나는 이 책을 이해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는 책을 덮어버릴 것이다. 그 때, 그 사람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나 향상의 가능성도 없다.

  

다시, 만일 노자가 자신의 글에 일일이 자세한 부연설명을 달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 책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책이 될 것인가. 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진정한 이름이 아닌지(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에 대해 그 자세한 근거를 제시했다고 하자. 그러면 사람들은 이 사실 자체보다 그 근거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노자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제시한 근거를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노자의 이 말이 논리적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그의 삶의 체험을 통한 통찰에서 나온 것이라면 사람들은 계속 그 근거에 집착함으로써 본질을 놓치게 된다.

  

나는 삶의 체험에서 나온 통찰은 섣불리 비판할 수 없다고 본다. 나의 지적인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모든 주장을 비판해 낼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오만한 것이다. 특히, 시인이나 신비주의자들의 말은 더더욱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예수가 <토마스 복음서>에서 한, “왕국은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바깥에 있다. 너희가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면 너희가 알려지고, 또한 너희가 바로 살아 있는 아버지의 아들임을 깨달을 것이다.” 이런 말들을 어떻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 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서양적인 사고방식은 언제나 비판할 것을 독려하는데, 무엇을 그렇게 비판하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살면서 갈수록 내 입에서 늘어가는 말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다. 그리고 삶의 어느 때에는 “이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희망한다. 적어도 탐구에의 열망을 멈추지 않는다면 말이다.

 

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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