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피우기

언어적 사고에 관하여

파라리아 2009. 6. 7. 04:33
 

끊임없이 분석하고 묻는 마음은 하나의 무기와 같다. 마음은 환경에 적응하고, 경쟁에서 다른 존재를 이기는 데에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특히 인간 사회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얽혀서 경쟁하고 서로 속이기도 하는 곳에서 생존하려면 언제나 치밀한 계산을 하면서 살아야 생존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나는 주위에서 언제나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항상 뭔가를 생각한다. 철학자나 과학자들만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학자가 아닌 사람들 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판단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지 따지고 계산해 본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이 영리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방식이 사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나는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생각이란 습관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계속 생각하는 일을 멈추기 어려워한다. 그들은 사물에 접하면(接物) 곧바로 생각을 일으킨다(起思). 이 과정은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고요한 때가 없다. 그런데 생각이라는 유용한 도구는 쓰면 쓸수록 습관화되는 경향이 있고, 그 유용함을 얻는 대가는 바로 심리적 불안정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마음은 더욱더 안정과 멀어진다. 그리고 생각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마음은 더욱더 편안해진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로와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생각이란 원래 하나의 도구일 뿐인데,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은 일종의 중독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중학교 때 이렇게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기를 겪었다. 그것이 어떤 상태인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나의 머리 속에서는 끊임없이 언어들이 지나갔다. 나는 언제나 머리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는 상태였다.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나는 계속해서 머리 속으로 말을 하고 있었고 끊임없이 논증과 이론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머리 속으로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 생각들을 주체하지 못해 나는 많은 글들을 썼다. 연습장이건 메모지이건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써내려가곤 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어느 때부터인가 그런 짓을 그만두었다. 그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인 상태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미치게 하고, 정신적 노이로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머리 속에서 언어적 사고를 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대신 사물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힘을 길러갔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서 반드시 언어적 사고를 끌어와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언어적인 사고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한다. 왜냐하면 언어적인 사고란 항상 과거의 기억을 끌어와서 앞에 있는 대상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죽은 단어들과, 지나가 버린 낡은 기억으로 어떻게 새로운 사물을 인식할 수 있을까.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것처럼, 태양은 날마다 새롭고,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태양이 떠오르는 장관을 보면서, 머리 속으로 ‘아, 아름답다!’ 고 이런 진부한 언어를 떠올리는 것보다는 그 순간의 느낌에 더욱 예민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실재에 대한 느낌이 개발되어 있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을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시인일 것이다. 언어적인 사고방식에만 빠져 있는 사람은 과학을 발전시킬 수는 있겠지만, 시 같은 예술을 발전시킬 수는 없다.

  

나는 평소 머리 속이 멍한 상태이다. 평소에 나는 거의 의도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있으려고 노력한다. 가만있을 때는 생각이 거의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거나 컴퓨터를 켜고 글을 써야 한다. 그 때서야 나의 머리는 언어와 논리의 메카니즘에 코드를 맞추게 된다. 그 이외의 시간에는 의도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귀찮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생각은 나의 평안한 마음을 손상시킨다. 생각이 많아지면 잠도 잘 오지 않는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너무 생각이 많은 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군대 있을 때, 들판에 있는 개구리 한 마리를 관찰한 적이 있다. 그 개구리는 눈을 뜬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움직이는 것은 오직 목과 가슴 부분에서 숨쉬는 운동뿐이었다. 개구리는 그런 상태로 오랜 시간 조금의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 광경은 나에게는 매우 신기한 것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겹지도 않을까? 팔이나 다리가 저려서 위치를 좀 바꾸고 싶지 않을까? 군대에서 할 일 없어 별 생각 다했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 때 내 머리 속에는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저 개구리 같은 생명체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말을 할 줄도 모를 것이다. 그는 단순히 저렇게 고요히 존재할 뿐이다. 그에 비하면 인간은 얼마나 참을성 없는 존재인가. 인간은 조금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항상 뭔가를 해야 하고, 아무 것도 안 할 때는 머리 속으로 생각이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언어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밖으로나 안으로나 항상 언어에 묻혀 사는 이런 상태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우리는 언어에 묻혀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계속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날 그 개구리 한 마리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200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