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향기

명상의 핵심은 주시이다 (1)

파라리아 2011. 3. 14. 12:21


명상은 모험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이다. 명상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거기엔 아무 행위도 없다. 사념도 없고 감정도 없다. 명상 속에서 그대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순수한 기쁨이다. 아무런 행위도 없이 존재할 때 이 순수한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또는 모든 곳에서 온다. 이 기쁨은 다른 원인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 아니다. 존재 자체가 기쁨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든 행위가 중단되고 단순히 존재하는 것, 이것이 명상이다. 명상은 행할 수도 없고 연습할 수도 없다. 그대가 할 일은 다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모든 행위를 중단하고 단순히 존재하라. 생각 또한 행위이다. 집중이나 숙고도 행위이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 자신의 중심에 존재할 수 있다면, 완벽하게 릴랙스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명상이다. 일단 이 기술을 터득하면 원하는 만큼 그러한 상태에 머물 수 있으며, 마침내는 하루 24시간 내내 릴랙스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동요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연후에는 서서히 행위를 시작할 수 있다. 물론, 그대의 존재가 동요하지 않도록 주의 깊은 의식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명상의 두번째 단계이다. 첫번째 단계가 단순히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면, 두번째 단계는 약간의 행위를 배우는 것이다. 마루를 청소하거나 샤워를 하면서도 그대 존재의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더 복잡한 행위까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그대들을 상대로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명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존재의 중심부에 잔물결 하나 일으키지 않고도 말을 계속할 수 있다. 내 존재의 중심에는 철저한 침묵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명상은 행위를 거부하지 않는다. 명상은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새로운 방식의 삶을 가르친다. 태풍의 중심에 존재하는 삶.


명상 중에도 그대의 삶은 계속된다. 오히려 더 강렬하고 기쁨에 충만한 삶, 더 분명한 시각과 창조적인 삶을 얻는다. 하지만 명상 속에서 그대는 방관자이다. 그대는 언덕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사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다. 그대는 행위자가 아니라 주시자이다. 주시자가 되는 것, 이것이 명상의 핵심이다. 행위는 제 나름대로의 차원에서 계속 진행된다. 거기엔 아무 문제도 없다. 그대는 장작을 팰 수도 있고 우물에서 물을 길 수도 있다. 사소한 일이든 큰 일이든 아무 것이나 가능하다. 그러나 한가지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그대의 중심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각성(awareness)과 주시는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절대로 흐려지거나 동요되어서는 안된다. 




- OSHO, <명상,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