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피우기

여러 가능성이 열린 삶

파라리아 2011. 8. 3. 13:57


나는 방랑자 기질이 있다. 나는 어느 하나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이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을 경험하며 살고 싶다. 사실 우리가 안정된 삶과 지위, 그리고 재산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많은 소중한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삶이 우리에게 주는 다채로움을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심리는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안정적으로 되었을 때는 이내 죽음이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릴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죽어라고 그 안정을 이루기 위해 젊음마저 불사른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대부분 돈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여자다. 


나는 만일 모든 것이 허락된다면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 음악가, 화가도 되어보고 싶고 히말라야의 수행자도 되어보고 싶다. 만일 이 사회가 사람들에게 그 많은 경험을 가능케 한다면 이 한번의 생은 얼마나 풍요롭고 가치있어질 것인가. 그리고 나는 사회가 그런 것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직 한가지 종류의 인간이 되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학자는 학자일 뿐이어야 하고, 음악가는 음악만 해야 하고, 운동선수는 운동만 해야 한다. 전문성이 갈수록 강조되어 감에 따라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왜 학자가 동시에 음악가여서는 안되는가. 왜 우리가 다차원적인 인간이 되어서는 안되는가. 

  

나는 지나치게 아카데미즘적인 냄새를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엄밀한 학문적 분석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추하다. 시를 쓰고 자연을 노래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학자는 추하다. 그러한 인간을 대하는 것은 마치 딱딱한 바위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다. 머리 속이 온통 학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인간은 추하다. 오직 학문적 체계를 세우는 것에만 관심있는 인간은 경직되어 있고 경쟁적이다. 

  

사람들은 만일 모든 사회적 제약이 없다면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사실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가치있다고, 존경받을 만하다고 인정하는 목표에 자신을 맞춘다. 사회라는 틀에 자기를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위대한 많은 것들은 대개 사회적 인식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한 것의 결과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바를 한 것이 인류에게 무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위대한 것은 대개 엉뚱한 데에서, 상식을 벗어난 것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1999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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