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피우기

자아와 죽음 - 존재에서 비존재로의 변화

파라리아 2011. 8. 16. 14:52



어떠한 종교적 선입견에서도 벗어나 단지 현 상태에서 알 수 있는 것에만 의존해 죽음이라는 현상을 보자. 그러면 죽음이란 단지 인간이 존재(存在)에서 비존재(非存在)로 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전생(前生)이나 내세(來世)에 대한 믿음은 단지 믿음일 뿐이다. 철저히 현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에만 의존했을 때, 죽음이란 '존재에서 비존재로의 변화'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존재에서 비존재로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인간은 그가 이 세상에 탄생하기 전에는 비존재였다. 간단히 말해서 이 세상에 없었다는 것이다. 무수한 시간 속에서 한 인간은 비존재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이 세상 속에 그 존재를 획득하게 된다. 수백년, 수만년, 수억년 동안 없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한 인간은 100년도 채 그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고 다시 비존재로 사라지게 된다. 도대체 인간의 본질은 존재인가 비존재인가? 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없다고 말해야 하는가?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어떤 한 인간이 본질적으로 없다고 말하기에는 지금 눈 앞에서 울고 웃고 하는 한 사람의 존재가 너무나 분명하고 생생하다. 하지만 그가 있다고 말하려고 하면 그는 몇 십년이 지나지 않아 그 존재가 사라져 버릴 것이니 정말로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본다면 인간의 존재란 있다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짧은 찰나에 있다가 사라져 버린다. 시간의 흐름을 긴 선으로 나타내 본다면 한 인간의 존재 수명은 한 점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본질은 존재보다는 비존재 쪽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우리의 원래 상태인 비존재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비존재야말로 인간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원래 없었으니까. 탄생 이전에는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떠한 힘에 의해서 이 세상 속에 존재를 획득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존재 상태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우리가 억울해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일 뿐이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역설처럼 보인다. 어째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사실 인간이 자신의 본질이 비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해도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죽음 앞에서는 공포를 느낄 것이고, 죽음을 거부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논의는 왜 인간은 본래 상태로의 귀환인 죽음에 대해 그렇게도 두려워하는지 그 원인에 대한 탐구에 이르게 된다.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자아(自我)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년, 수십년 동안 살아오면서 자아라는 것이 하나의 고정된 실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따라서 자신의 자아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자아라는 것... 우리가 본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아도 본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없던 것... 그것이 다시 원래 없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자아도 있다가 사라질 뿐이다.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정말로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해 왔다.


"자아와 죽음은 공존할 수 없다."


우리는 자아의 실재를 인정하거나 죽음의 실재를 인정하거나 둘 중 하나만을 인정해야 한다. 둘을 동시에 인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통 자아의 실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자아를 인정하는 대신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떨게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슬퍼하고 막 운다. 그리고 그 죽은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죽음은 악(惡)'이라는 뿌리 깊은 관념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생각해 보면 '죽음은 자아의 상실, 나의 사라짐' 이라는 생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죽음의 문제는 자아의 문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이 관계를 해결해야만 우리는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997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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