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피우기

겸허함이란 무엇인가?

파라리아 2009. 6. 7. 03:37

 

람들은 타인에 대해서는 그들이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싫어한다. 이것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누군가 자신의 잘난 점을 스스로 떠들어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 그가 정말로 자랑할 만한 능력을 소유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냥 허풍으로 떠벌리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의 잘난 점을 스스로 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밥맛이다’, ‘재수없다’, ‘그래 너 잘났다.’와 같은 표현들은 사람들이 이런 언행을 얼마나 혐오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행동을 접했을 때는 바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그 사람의 인격을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정반대의 유혹을 받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난 점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고 부러워하거나 우러러보기를 바란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는 커다란 유혹이다. 인간은 그토록 커다란 자기애自己愛를 지니고 있다. 자신이 남과 비교하여 못한 것이 있으면 의기소침하고 시무룩해지며, 더 나아가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뭔가 남보다 뛰어난 게 있으면 자꾸만 그것을 말하고 알리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 내가 남보다 뛰어난 어떤 것, 그것이 나의 자아自我를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음식이다. 자아는 그런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자꾸만 그 정체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마치 인간이 식욕과 성욕을 추구하듯이 자기과시욕을 만족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잘난 점을 말하는 것은 싫어하면서 자기 자신은 스스로의 잘난 점을 알리고 싶어 한다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순이다.

 

겸덕謙德, 즉 겸허의 덕목은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 중시되어 온 것이다. 겸허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뛰어난 점이나 자신의 공功을 뽐내지 않는다. 뛰어난 점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고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자신을 숙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자아自我에 상처를 주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의 인격을 높이 평가한다. 나의 잘난 점을 이야기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자아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많은 분쟁을 막을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때 사람들은 나와 더불어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잘난 점을 부각시키면 사람들은 나의 자아를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고, 그것은 그들 자신의 자아를 자극하여 경쟁심과 질투를 유발한다. 그러나 내가 겸허한 사람이고 자신들의 자아와 경쟁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나에 대해 편안해 하고 안심할 것이다. 『장자』에 나오는 빈 배의 고사처럼, 자신의 배와 부딪힌 것이 사람이 없는 텅 빈 배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결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겸허해진다는 것은 스스로 빈 배처럼 되는 것과 같다.

 

겸허함의 덕목은 또한 그것이 실행하기 힘들기 때문에 찬양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타인의 자랑은 못 견디면서도 자신의 자랑은 어떻게든 하고 싶어 하는 모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을 깨닫고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己所不欲, 勿施於人)’ 사람이 있다면 그는 비범한 자이다.

 

하지만 겸허함 또는 겸손함이 이러한 이유 때문에 행해야 하는 것으로 그칠 때, 그것은 진정한 겸손함은 아니다.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고 사람들이 나의 겸손함으로 인해 나를 존경한다는 이유 때문에 겸손하다면, 이 때 겸손은 그 진정성을 잃게 된다. 첫째, 겸손함으로써 타인의 경쟁심이나 질투를 유발하지 않고 따라서 원만한 인간관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겸손하다면 이것은 매우 공리주의적인 발상이 된다. 그것이 나와 남, 나아가 전체 사회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행하는 것은 공리주의적인 것이다. 둘째, 내가 겸손해지면 사람들이 나를 더 존경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겸손하다면 이것은 자아를 교묘하게 홍보하는 수단이 된다. 이것은 앞에서 말했던, 인간이 자신의 잘난 점을 남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욕망의 변형된 형태일 뿐 근본적인 모순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간의 이러한 겸손함은 가식적인 것이다. 가식적인 것은 결코 근본적이지 않고, 가식적이어야 할 조건들이 사라지면 금방 그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

 

진정한 겸손함은 저절로 우러나와서 행해지는 겸손함이다. 자기가 겸손하다는 생각도 없이 나오는 겸손함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겸손함이어서 어떠한 조건도 없이 겸손한 사람이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이다. 이것이야말로 겸손의 지극함이다. 겸손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러한 경지이며, 겸손의 효용 때문에 겸손한 것은 그보다 아래 단계의 겸손함이다. 이를 불완전한 겸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래 단계의 겸손함도 그 효용은 매우 크다. 겸손은 자연의 도道이며, 동기야 어쨌건 자연의 도가 인간 사회에서 행해졌을 때 그 효용은 매우 크기 때문이다.

 

2004. 6. 『주역 겸괘에 대한 고찰』머리말에서.